그냥 좋아서 하는 공부, 사랑, 운동, 놀이...
물론 주머니엔 동전 한푼 없었지만, 그에겐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 모험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즐겨읽던 책에 나오는 멋진 주인공들처럼. 그는 일어나서 천천히 광장을 거닐었다. 상인들이 진열대를 세우고 있었다. 그는 과자 장수의 일을 도왔다. 그 상인의 얼굴에는 특별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기쁨으로 충만하고 삶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그의 얼굴에는 진지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미소가 깃들여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 미소는 신비로운 늙은 왕, 노인의 미소와 흡사했다. '이 과자 장수는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거나 가게 주인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서 과자를 만들어 파는 건 아니겠지. 그래, 그는 그저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걸 거야.' p126 T1000.0 : 삶에 ..
물이 반쯤 담겨있는 컵을 두고, '물이 반이나'하거나 '물이 반밖에' 한다면, 내심 전자가 여유, 낙관를 품고 있다면 후자는 불안, 초조를 품고 있다. 그런데 둘은 모두 생각이다. 물은 그냥 반이 담겨있을 뿐. 반이 담겨있는 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 침착하게 된다. '물이 반쯤 담겨 있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앞서 '여유, 낙관'이 긍정을 '불안, 초조'가 부정을 표상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침착'은 긍정과 부정을 너머서는 긍정이다. 또 긍정과 부정이 생각이라면 침착의 긍정은 생각 너머의 생각, 생각 아닌 생각이라 하겠다. 삶에서 난관에 부딪치면 긍정과 부정을 떠난 긍정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태도임을 새삼 절감한다.
불교에서 청정은 더러움과 상대하는 깨끗함이 아니고 더러움과 깨끗함을 탈영토화한 절대인데, 말하자면 청정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 일 뿐. 하나의 척도를 통해 더러움과 깨끗함을 나누지 않으므로 상대적 개념이 아니고 또 어떤 공통의 척도를 갖지 않으므로 절대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청정함에는 어떤 걸림도 없다. 의 표현을 빌자면 매끄러운 일관성의 평면이라 할 수 있겠다. 청정함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기에 더러운 것이 청정한 것이되고 또 깨끗한 것이 청정한 것이 되는데, 청정, 절대적 탈영토화를 예술을 통해 예시해주는 것으로 생각되는 글이 있어 인용해 본다. 이처럼 모든 것을 횡단하며 존재론적 평면 위에서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을 '평면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횡..
"맞네. 자유롭다는 것은 흔히들 말하듯이 이런저런 가능성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자기 맘대로 택하는 것이 아니네. 그건 자의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을 혼동하고 있는 거지. 자유롭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하고 얻으려는 결과를 제대로 얻을 능력이 있음을 뜻하지. 그렇게 하려면 현재 상태를 야기한 적절한 원인을 충분히 알아야하고,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데 적절한 원인을 알아야 하네. 다시 말해 자기도 모르는 원인의 인과 작용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작용하고 행동하는 게 바로 자유지. 그렇기에 엄밀한 이미에서의 자유란 오직 신만이 가능하네. 어떤 양태의 상태와 행동을 둘러싼 인과의 연쇄를 충분히 알고 그 인과에 따라 행동하는 건 오직 신만이 가능하니까. 그러니 신의 관념을 갖고 있다면 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