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뚜라나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는 체계들에 대해 대단히 깊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의 모체를 알고 있고, 이 모체에 의해 덮이지 않는 틈들과 빈 공간들을 발견합니다. 이 틈들 속에서 그는 완전한 자유와 더할 나위 없는 자기믿음을 가지고 움직이며, (꼭 그래야 한다면) 자기 자신을 보이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몇몇 일들이 마무리하기 위해 그와 함께 마을로 내려가서 주차 공간을 찾던 때가 기억나는 군요.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바로 아래에 붙어 있는 경찰서 앞에다 차를 주차했습니다. "특별히 허가된 차량만 주차 가능함." 그가 매우 자신만만하게 차에서 내리자, 나는 그에게 주차하기 위해 왜 딱히 이 장소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가 진짜 특별한 허가를 얻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이해하고 싶게 하는 것, 그거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지. 비밀이나 수수께끼에 우리가 빈번히 매료되는 건 그 때문일세. 그런데 누군가 비밀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지. 보이지 않게 감추고 알아보지 못하게 은폐하는 것은 저급한 비밀이라고. 반면 눈앞에 보라고 다 까놓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비밀이라고. 그런 점에서 각자가 스스로 신이면서도 신임을 알지 못하는 걸 보면, 신이야말로 최고의 비밀인 셈이지." p86 T1000.0 : "이미 완전한데 단지 모를 뿐."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아무도 실패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실패하는 것이다. - 사무엘 베케트
1. 유목민의 천막이나 보따리 같이 이동 혹은 떠남을 상징하는 물건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늘어놓는 것이 노마디즘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상투적인 사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목이 정착과 구별되는 것이 이동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멈출 경우에도 이동의 벡터속에서 멈춘다는 것, 비록 재영토화를 하며 나아가지만 언제나 탈영토화의 벡터가 일차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에 의해서다 . 주어진 배치, 주어진 상식이나 감각을 화해시키며 탈영토화하는 것. 그리고 흐름을 통제하고 질서화하는 홈을 따라 이동하는 게 아니라, 그런 홈을 범람하고 흘러넘치면서 소용들이처럼 모든 방향으로 열린 벡터를 가동하는 것. 또한 윤곽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어떤 시각적 형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윤곽선이 사라지고 형상의 구별이 불가능해지는 근접성 속..
無我. 삶을 무아로 산다는 것은,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무아는 시작된다고 하면, 옳고 그름이 정해져 있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 본래 옳고 그름이 없다고하는데 그러면 삶이 허무나 쾌락으로 치닫지 않을까하나, 中道. 삶을 허무에도 쾌락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는 길이 바로 중도를 따르는 것이라 하면, 중도는 인연을 따라 행하는 것인데, 인연을 따른다는 것은 밥먹을 때 밥먹고 뚱눌때 똥누는 시간과 공간의 가장 적절한 조화를 찾아 행하는 것이라고 할 적에, 중도는 세속적으로 옳다라고 하는 것들을 행할 때도 있고 그르다고 하는 것들을 행할 때도 있어 중도는 옳고 그름을 너머서 있다. 해서 살아가는데 있어 '내가 옳다'는 생각을 늘 알아차려 바로 내려놓기를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나의 ..
볼때는 '봄'만이 있다. 있음에서 '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