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피노자가 보여주고 있듯이, 모든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복종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류, 공로와 과실, 선과 악 등은 복종과 불복종에 관련된 단지 사회적인 개념일 뿐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사회는 사유 능력을 복종의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회, 오직 행위에만 적용되는 국가의 규칙에 그것을 종속시키지 않는 것을 자신의 고유한 이해로 삼는 사회일 것이다. 사유가 자유로운, 따라서 생동적인 한, 그 어느 것도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사유가 그렇지 못하게 될 때, 모든 종류의 다른 억압들 또한 가능해지며, 그것들은 이미 실현되어, 어떤 행위라도 유죄가 되고 모든 삶이 위협받게 된다. (스피노자의 철학 10) 2.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
모든 것이 공하고, 일체가 다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 색 그대로가 공이고 공 그대로가 색이다. 고로 아무 얻을 것이 없어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아 지금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내가 보는 것이 다 마음이 만드는바, 내가 보는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있다고 전제하는 전도몽상에서 깨어있으려면 이 실체를 환상처럼 본다. 저기 보이는 꽃을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환상처럼 본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문제는 내가 환상처럼 보아도 환상처럼 보이지 않는 눈 앞의 사실에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하여 재차 관점을 잡아보면, 먼저 환상처럼 본다는 건 공하다는 것과 마음이 만드는 것의 중도로 삼을 것이고, 두번째로 저기 꽃을 보고 아름답다는 감응을 일으킬 때, 나에게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 말하자면 그 꽃..
제법이 다 공하다, 다 마음이 짓는 것. 거기 있다고 보이나 거기 있지 않음을 봄. 거기 있다는 걸 지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은 아니다. 1. "나는 결코 그림을 열심히 보지 않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나를 흥분시키는 훌륭한 그림을 볼 때 그 그림은 나를 흥분시킨다기보다는 내 안의 모든 감각의 밸브를 열어 줌으로써 나로 하여금 보다 격렬하게 삶으로 되돌아가게 만듭니다."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309) 2. 당신 말은 검증에 대한 그러한 사고는 이미 존재론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왜냐하면 그런 사고는 어떤 물건이 '저기 바깥에' 실제로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존재 유무를 검증하고자 하는 그 어떤 것이 이미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
T. 질문: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본다는 것은 어떤 체험인가? 1. 저는 오히려 거꾸로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붉은 것으로 나타나는 어떤 대상이 있다고요. 그러면 이러한 색에 대한 인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 되지요. 어떤 가정이 여기서 발견됩니까? 빨갛게 칠해진 대상이 바깥 세상에 존재한다고, 그리고 저의 지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다름 아니라 붉게 칠해졌다는 사실이라고 저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거꾸로 물어 봅니다. 우리는 그 객체가 빨갛다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그러면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글쎄, 명백하잖아요? 우리가 보잖아요?"라고. 이게 뭐를 의미하냐 하면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는 것으로부터 밖에 있어야 하는 것을 추론해냅니다. (실재표상이란) 그야..
'상황은 이미 일어났다'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명제입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한 상황이 지금의 내 현실입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한들 모두 번뇌에 불과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맞지 않아'하고 고집하는 마음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세상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와도 맞추어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내 의지대로 상황을 바꿔 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바꿔 살고자 하면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작은 나무막대기가 필요한데 큰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칼로 잘라내 작은 나무막대기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여건을 바꾸려면 노력과 수고를 당연히 여기고 기쁘게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을 확연히 안다면 내 삶을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