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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 아이였던 저에게 이미 마술의 본질이란 이중바닥이나 거울 속임수 같은 트릭으로 작업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이 분명했습니다. 마술이란 오히려 마술사가 관중과 함께 하나의 놀라운 세계를 발명해내는데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술사는 어떻게 그런 놀라운 세계가 생겨나는지를 아는 사람인 것이지요. (발명품 208)
2.
마술과 인식에 대한 당신의 이해 간의 연관성이 제게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마술사란 원래가 (인식론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진부한 실재론자이지 않습니까? 그가 하는 일은 현실적인 실재를 전제로 하고서 착각을 만들어 내면서도 자신은 그 착각이 실재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런 사람 아닌가요. 토끼가 사라지고 미인이 톱에 잘리고 등등 그는 비실재적인 것을 만들어 내면서 동시에 그 비실재적인 것이 실재인양 여기는 잘못된 표상을 만들어내잖습니까.
그런 생각은 마술을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설명을 찾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이미 몇몇 단어들이 저를 당혹스럽게 하는데요. 왜 사람들은 '트릭(속임수), 착각이다'라고 함으로써 뭔가를 경멸조로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조금 전에 사용한 말은 (트릭, 착각, 실재, 비실재 등) 이미 실재론적 전제들에 물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뭐가 실제고 뭐가 비실재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합니다. 또 마술사는 뭔가를 감추고 비밀로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훌륭한 마술사는 아무 것도 감추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명백히 만듭니다. 그는 아주 천천히 관객들을 그들의 일상세계로부터 끌어내어 놀라움이 존재하고 놀라움이 보여 질 수 있는 마술의 세계로 성공적으로 이끕니다.(208)
3.
그는 관객의 기대를 가지고 장난을 쳤군요.
그것도 연이어서 말이죠.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묶었던 보자기가 풀려 나오는 게 아니라 묶인 채 다시 보여 졌고, 토끼가 사라지지 않고 있던 그대로 보여졌죠. 그 마술사는 제게 마술이 성공하도록 만드는 것은 항상 자신의 기대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줬습니다. 마술사가 놀라움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는 의식적이건 그렇지 않건 그런 분위기가 생겨나고 가능하도록 노력합니다. 성공적 마술의 밤은 근본적으로 보면 운 좋은 만남입니다. 모두 함께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거죠. (발명품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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