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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정신의 본성 및 기원에 대하여

 

정리 43 주석. 정리 21의 주석에서 나는 관념의 관념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러나 앞의 정리는 그 자체로 충분히 명백하다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왜냐하면 참된 관념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나 참된 관념이 최고의 확실성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사물을 완전히, 즉 가장 잘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확실히 이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을 품을 수 없다, 관념이 화판 위의 그림처럼, 말없는 어떤 것으로서 사유 양태, 즉 인식작용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질문하건대, 먼저 사물을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자신이 그 사물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즉 먼저 사물에 대하여 정통하지 않다면 자신이 그 사물에 대하여 정통하다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또, 진리의 규범으로서 참된 관념보다 더 명백하고 더 확실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진실로 빛이 빛 자체와 어둠을 명시하는 것과 같이 진리는 진리 자체와 허위의 규범이다.

이것으로서 나는 다음의 여러 물음에 대답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참된 관념이 <사유의 양태인 한에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의 대상과 일치한다고 일러지는 한에 있어서만 거짓된 관념과 구별된다면, 참된 관념은 실재성이나 완전성 면에서 거짓된 관념 이상의 것을 조금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지(왜냐하면 양자는 단지 외적 특성에 의해서만 구별되므로 <그리고 내적 특징에 의해서는 구별되지 않으므로>), 따라서 참된 관념을 소유한 인간도 단지 거짓된 관념만을 소유한 인간보다 <실재성이나 완전성 면에서 조금도> 우수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다음으로, 어찌하여 인간은 거짓된 관념을 가지게 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자기가 대상과 일치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나는 이미 답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참된 관념과 거짓된 관념의 차이에 관해서 말하자면, 전자는 후자에 대하여 유(有)가 비유(非有)와 대비되는 것과 같은 관계에 있다는 것이 정리 35에 의해 밝혀지기 때문이다. 허위의 원인에 대해서 나는 정리 19에서 정리 35의 주석에 이르기까지 아주 명료하게 제시했다. 이것에 의해 참된 관념을 지니고 있는 인간과 거짓된 관념만을 지니고 있는 인간 사이의 차이도 분명해졌다. 마지막 물음에 대해서, 즉 인간은 자신이 대상과 일치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라면, 내가 위해서 충분히 밝힌 것처럼, 즉 진리가 진리 자체의 규범이라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것에 더하여, 우리의 정신은 사물을 정확히 지각하는 한에 있어서, 신의 무한한 지성의 일부이다(정리 11의 계에 의해). 그런고로 정신의 뚜렷하고 명확한 관념이 신의 관념과 마찬가지로 참이라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T1000.0 :

1. 참된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사물을 완전히, 즉 가장 잘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다시말해 참된 관념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관념이 화판 위의 그림처럼, 말없는 어떤 것으로서 사유 양태, 즉 인식작용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즉 마음이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를, 말없는 어떤 것으로서 인식작용하는 자체가 참된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는 것은 내가 마음의 표상을 통해서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할 때만이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다. 거울에 비친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인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사물만이 아니라 전체 인연의 장 속에서의 현존하는 사물[거울 속에 비친 사물은 현실의 법칙들, 말하자면 논리적 형식에 상응하고 있는데 그것까지 모두 포함해서]을 인식하는 것이 됨으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은 사물과 일치되는 되기의 경험이다. 예컨대 누구나 자동차를 안다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자동차를 모르는 것이고 자동차의 본래 본성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제 자동차가 '나'다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스스로를 아는 것처럼 자동차를 알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자동차의 본성을 다 알 필요는 없다. 핵심은 내가 표상을 통해 안다는 인식이 무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점이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이다. 때문에 진정으로 사물을 완벽히 안다는 것은 '되기'가 되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즉 먼저 사물에 대하여 정통하지 않다면 자신이 그 사물에 대하여 정통하다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자동차의 예를 계속들어 자동차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관찰자는 자신의 몸을 통해 그것을 이해한다. 자동차의 엔진이 심장의 역할을 하고 바퀴는 팔다리를 조정석은 두뇌를 등등등 노력을 통해 스스로 자동차에 대하여 정통한 인식을 이미 바탕에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스피노자는 빛이 빛자체와 어둠을 명시한다고 하였는데, <대승기신론>의 비춰본다면 시각始覺을 통해 본각本覺과 무명無明이 명시되는데, 시각은 곧 본각이기 때문에 진리가 진리자체와 허위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3. 참된 관념은 실재성이나 완전성 면에서 거짓된 관념 이상의 것을 조금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지, 참된 관념을 소유한 인간도 단지 거짓된 관념만을 소유한 인간보다 <실재성이나 완전성 면에서 조금도> 우수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참된 관념과 거짓된 관념이, 그리고 참된 관념을 가진 사람과 거짓된 관념을 가진 사람이 실재성이나 완전성 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은 부처가 중생이고 중생이 부처인되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이 되는 것이고 부처가 실재성이나 완전성 면에서 더 우수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생사와 열반이 생사가 열반이고 열반이 생사인데 그 둘이 <실재성과 완전성 면에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스피노자는 진리가 진리자체와 허위의 규범이라고 하였다. 이를 이해로 불교에서 모두가 부처라고 하는 까닭도 부처가 부처와 중생의 규범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미 부처인데 이를 모를 뿐, 또는 거짓된 관념에 가려져 보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참된 관념을 인식하게 되면 거짓된 관념이 사라지고 참된 관념만이 남는다. 있는 그대로, 眞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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