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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이 초월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형이상학적 태도는 다음과 같은 태도, 즉 몸이 인간 지식, 인간 이해, 그리고 인간 의식의 토대라는 점을 부정하는 태도를 수반하며, 몸이 참된 지식에 이르는 길에서 하나의 방해이자 제한으로 이해되는 인식론적 견해를 낳는다. 이와는 다르게, 초월적 실재의 존재를 선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연원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태도는 본질들과는 관계가 없으며, 그 대신 어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개체와 상호작용하는 삶을 보존하면서 자기 자신의 신체 동학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태도에 따르면, 관찰자는 신체 및 신체 동학을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의 토대로 인식한다. 그리고 관찰자는 위에서 언급한 질문들을 던진다. 인간들로서의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신체 동학이 실현되는 상관적인 공간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완전히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일반적인 형태로 질문을 던진다. 사실상, 우리의 신체 동학을 통해 우리의 인간적 삶을 계속적으로 보존하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하는' 인간들로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초월적 실재의 형이상학을 버리도록 이끄는 기본적인 이해[방식]이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우리가 생명체계들이며 우리의 삶을 실현하면서 '한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을 (모든 설명 또는 합리적이 주장을 위한)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채택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견해에서 볼 때 우리의 생물적 짜임새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은 이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관찰자는 자기 자신의 신체성(bodyhood)이 파괴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발명품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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