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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의 부계적-모계적 문화는 어떤 암묵적인, 그리고 때때로 명시적인 형이상학적 견해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존재란 본질들을 배경으로 하여, 즉 인간들이 '하는' 것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본질들을 배역으로 하여 나타난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함축한다. 나는 우리의 부계적-모계적 문화의 이러한 형이상학적 태도 또는 근본적인 성찰의 입지점을 초월적 실재의 형이상학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부계적-모계적 문화는, '일이 이러이러하다'라고 우리가 주장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게 무엇인지, 무엇이 진짜인지 묻는 물음의 주문에 흘려서,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본질적인 것ㅇ르 분리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본질적인 존재, 우리의 참된 자아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즉, 우리는 실현 불능한 것으로 반복해서 판명되는 탐색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추구함과 동시에 그러한 물음이, 사실상 우리가 '하는' 것만을 '할 뿐인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대답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기의식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체계들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회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반복해서 빠져들도록 강제되거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신학적인 사유 속에서 빠져들도록 강제된다. (함으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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