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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어떻게 해서, 독립적인 실재의 존재를 (모든 것이 발생하는) 초월적인 배경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기반하고 있는 그 형이상학적 태도를 버렸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태도가 일상적인 삶의 체험 속에서 아무런 작동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식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또는 "인식이란 무엇인가?", 또는 "인식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지 않았다. 이러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방식인 것이다. 즉 우리의 주장들을 전개할 때, 어떤 뒷받침을 외적인 실재 속에서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대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인간들로서 하는 그 어떤 것을 할 때, 우리가 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또는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 그 영역의 구분들을 행하면서 어떻게 관찰자들로서 작동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받아들일 대답이란 생명체계들의 현실적 작동의 형태 속에서 발생했어야 하는다는 것을 내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할 때 이때까지 사용해 왔던 모든 개념들과 관념들이 (그 과정 속에 어떠한 초월적인 가정들을 도입하지 않고) 하나의 생명체계로서의 나의 삶의 정합성들로부터 파생되어 나타났다는 것을 명백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했다. 실로 위에서 제시된 바의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는 것은, 암묵적인 형이상학적 태도를, 즉 초월적인 실재의 존재를 모든 존재의 필수적인 토대로 받아들이는, 그리고 우리 인간들이 하거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타당화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에 만연된 선험적인 사고를 사실에 비추어서 버리는 것을 수반한다. 더욱이, "우리가 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된지되 나와 같은 식으로 대답을 하면서 던지는 바로 그 행위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함축한다. 즉, 우리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 까닭은 이러한 질문들이, 인간들이 생명체계들로서 '하는' 것을 '하는' 영역속에서 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함으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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