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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린 여섯 가지 장애가 없는 수행자와 이미 장애를 넘어선 수행자라면 진여삼매를 체득할 것이고, 진여삼매에 대한 체험으로 법계가 자성 없는 공성의 인연으로 하나 된 세계임을 알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특별한 이념이나 형상에 귀속된 삶을 벗어난 자유로운 삶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 삶'이나 '무엇으로의 삶'이 아니라 인연의 어울림에서 독특한 개체를 현재에서 드러내는 삶입니다. 인위적인 모든 분별이 그칠 때 살아 있는 현재가 삶의 전체가 되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분별된 인식 틀에 맞춘 삶이 아닙니다. 성인의 삶을 닮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눈에 비추어진 것으로 만드는 것을 중단한 자유로운 삶이며, 스스로의 내적 이유로부터도 자유로운 삶을 뜻합니다.
모든 분별상은 단지 분별상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시대나 마명 시대의 인도 일반인의 삶을 생각한다면 분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브라만과 수드라와 같은 신분 체계는 사회질서상 편의로 분별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확고 부동한 실체적 진실이 되고 권력이 되어 지배와 피지배를 당연시 할 뿐만 아니라 브라만의 생각에 의해서 수드라의 생각까지도 지배 받는 분별인 것입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쌓여있는 사회적인 분별이 시대를 이어가면서 개인의 삶을 저 밑바탕까지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별은 연기법을 깨닫고 나서야 허구인 것이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부처님 이후부터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연기법을 학습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드르이 신분질서를 정하는 분별상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는 것을 수행의 출발로 삼았다고 하겠습니다. 분별없는 연기의 어울림에서 모든 생명들은 제 모습을 바꾸지 않고도 법계의 생명임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와 같이 신분차별과 같은 허구의 분별상이 본래부터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차별된 업의 활동을 다스려가는 것이 '지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내용이 결과를 담보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1
2. 나로 산다는 것은 미시권력이 되어 나의 밑바탕까지 조정하는 분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분별상까지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 그것이 허구임을 확실히 알아 오로지 어울림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되어야 '난 나이고 싶다'의 의미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삶에도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생각과 가치를 되묻고 성찰해보아야 비로소 나로 살 수 있겠다.
- <대승기신론2> p38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