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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리학>이 제기하는 3중의 실천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자연 속에서의 우리의 처지로 인해 우리는 나쁜 만남들과 슬픔들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즐거운 정념의 극한에 도달해서, 그로부터 자유롭고 능동적인 감정으로 이행할 것인가?
[나쁜 만에서도 깨달음에 도달하고 것또한 긍정하므로써 좋음과 나쁨을 너머 능동적인 감정으로 이행하는]

2. (우리의 자연적 조건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신체, 우리의 정신, 그리고 다른 사물들에 대해 부적합한 관념들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능동적인 감정들을 가능케 하는 적합한 관념들을 형성하는 데까지 어떻게 이를 것인가?
[자유에 대한 갈망, 화두에 대한 사유, 신체의 체험, 무엇보다 무지타파. 연기적 사유를 통해]
3. (우리의 의식은 환상들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 신 그리고 사물들을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따라 의식할 것인가?
[있는 그대로를 통해 있는 그대로를 보기: 여몽환포영]

2.

<윤리학>은 필연적으로 기쁨의 윤리학이 될 수 밖에 없다. 오직 기쁨만이 가치가 있으며, 오직 기쁨만이 능동과 능동의 지복에 가까이 있고 또 우리를 가까이 가게 만든다. 슬픈정념은 언제나 무능력에 속한다. (스피노자의 철학 47)


1-1
어차피 결혼한 김에, 어차피 자식 낳은 김에, 어차피 부도난 김에, 어차피 암에 걸린 김에, 어차피 늙은 김에 괴로워하지 말고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늙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병이 났을 때만 깨칠 수 있는, 이혼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배신당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다가 토했을 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토해는 것과 같같은 경험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면서 왜 못 깨치느냐 물으면 "아직 해골바기지 물을 못 마셨어요. 요새는 무덤이 없잖아요. 무덤이 있음녀 저도 들어갈래요." 이럽니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마다 거기에 있어요.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알아차리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세세생생 육도를 윤회하며 해맬 수도 있고 단박에 깨달아 해탈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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