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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정리 6.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한에 있어서, 감정에 대하여 보다 큰 능력을 갖거나 또는 감정으로부터 보다 적게 작용 받는다.
증명: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이라고 인식하며 (제1부 정리 29에 의해), 또한 모든 것이 원인들의 무한한 연쇄에 의하여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된다는 것을 인식한다(제1부 정리 28에 의해). 그러므로 (정리 5에 의해) 그러한 한에 있어서 정신은 그러한 사물들에서 생기는 감정으로부터 보다 적게 작용받도록, 또한 (제3부 정리 48에 의해)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보다 적게 자극받아 변화되도록[감정을 품도록] 할 수 가 있다.Q.E.D
주석: 사물들이 필연적이라는 이 인식이 우리가 보다 명료하고 생생하게 표상하는 개물들에 보다 많이 적용되면 될수록, 감정에 대한 정신의 이 능력은 더욱더 크며, 이것은 경험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어떤 선에 대한 슬픔은 그 선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그 선을 보존할 수 없었음을 깨닫는 순간 감소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아가 말하는 것이나 걷는 것, 또는 추리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몇 년 동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유아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성하여 태어나고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유아로 태어난다면, 모든 사람들은 그 유아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유아 시절 자체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의 과실이나 결점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다른 많은 예들을 우리는 지적할 수 있다.
<에티카> p311
2.
생겨난 것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생겨난 것도 아니고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의 출렁거림에 불과해요. 우리 육신의 태어남은 지수화풍이 인연에 따라 모인 것이고, 죽음은 인연에 따라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태어난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죽는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에요. 이같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죽음을 그냥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태어나고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태어남이나 죽음에 우리가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집착하지 않으면 고苦도 없고 낙樂도 없어요. 그런데 그것이 내 가족이다. 할 때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애착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 변화를 움켜쥐고서 변하지 못하도록 막아보려고 하지만, 변화한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인데 이 개관적 사실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더 큰 괴로움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었다 사라지는 것을 응시하듯이, 구슬 통의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는 것을 응시하듯이 삶과 죽음을 응시해야 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 정견正見이요 조견照見이요 관觀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나간다면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습니다.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에요. 죽음이라는 현상을 삶이라는 현상처럼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붓다, 나를 흔들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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