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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識性이라고 하는 것은 흰두교에서 브라만인 사람은 계속 브라만으로 태어나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지라도 그 행위를 소유하고 있는 나가 브라만을 그 특성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소유하는가 즉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지금 삶에 있어서 다름은 있지만 브라만이라고 하는 자아는 변해가지 않는다. 그래서 변해가지 않는 브라만이 모든 행위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브라만은 없고 행위만 남아있다. 행위만 남아가니까 전후찰라에 정보라고 하는 자기가 지어놓은 소지장과 번뇌장에 정보가 있으면 그전에는 우리가 생각할때 무엇이 정보를 소장하고 간다라고 생각하는데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이 정보만 남아있다. 그래서 이 정보에 새로운 정보가 오면 정보의 장이 변화가 온다. 전후찰라에 그전에는 정보를 담고 있는 나가 있으면 동일한 어떤 것이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었지만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갑자기 이 정보가 변해서 없어진다. 다른 정보의 장이 되버린다. 그 순간 그러니까 바로 전까지 있었던 정보의 장은 소멸하고 소멸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보의 장이 형성된다. 소멸과 생성이 동시에 계속 일어난다." 1
"브라만이나 아트만이 나오는 것은 자기들이 학습된 전통에 학습된 정보가 마치 표상되서 현재화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여기서 수행을 중단하면 아트만이 있고 브라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또 무엇인가하고 되묻기 시작했기 때문에 왜냐면 사전적으로 학습되어진 일체 모든 것을 배체하고 새롭게 새롭게 세상을 보는 것을 통해서 보니까 그러한 것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세상은 정보만 흘러간다. 정보를 담고 있는 어떤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정보 속에 새로운 것이 오면 바로 전까지의 정보에 장은 소멸하고 샐운 것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정보의 장이 형성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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