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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라는 개념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적인 체험을 하는 가운데 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방식은...]
나는 관찰자라는 개념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적인 체험을 하는 가운데 여러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우리가 지각하고 다루는 그 사물들이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히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외부의 관점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결국 다음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1.
'관찰자들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어떤 것을 그것이 마치 자신들과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구분하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이 체험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내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면, 왜 우리가 어떤 것을 우리와 분리된 것으로 체험하는냐를 우선 밝히는 것이 선생님의 목표들 중의 하나이겠군요?

이 방에 있는 탁자와 의자들, 나의 재킷, 내가 두르고 있는 목도리 - 이 모든 것들을 의심할 바 없이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주어진 상황의 외부에, 그리고 그것과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관찰하기가 하나의 체험, 즉 사물들의 외관상의 독립적인 존재와 역시 관계되는 체험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2.
'도대체 나는 이러한 사물들이 저기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계가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주장인가?'


그렇다면 선생님의 출발점은, 우리가 불가피하게 우리의 실현들[현실들]을 구축하는 것에 연관되어  있으며, 그래서 그것들에 묶여 있다는 통찰을 확립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본리를 체험하는 것이겠군요.

처음에는 분리를 체험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결국엔 연결됨의 통찰로 바뀝니다. 물론 나는 내가 서술하고 있는 대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유리잔을 구분해 내는 것은 나와 관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서술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구분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또는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아무도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환경으로부터 특화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는 물질적인 실체 또는 관념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가 행하는 첫 번째 구분은, 실재를 구축하는 기원인, 알기의 빅뱅 같은 것이군요. 어쨌든 무언가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오직 구분되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설령 그것이 우리 자신과 구분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구분의 작동을 통해 그것과 묶여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구분할 때마다 구분되는 실체는 그 구분의 의미를 갖는 어떤 배경과 함께 출현합니다. 구분되는 실체는 그것이 존재하는 영역을 산출합니다. (함으로 49)

[나에게, 마뚜라나의 관찰자는 스피노자가 신을 말하는 방식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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