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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앎

프란시스 베이컨, 메모 3-2

T1000.0 2021. 1. 22. 06:51

11.
시에서는 모든 것이 좀더 압축적이고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하는데, 그게 바로 내가 산문보다는 시 읽기를 더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하는 게 좋겠군요. (195)

12.
네. 나는 또한 프루스트를 영어로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원작과 도저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었지요. 그에 관해 내가 정말로 찬미해 마지 않는 것은 그가 인간의 행동을, 특히 질투를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195)

13.
발자크에 관해서라면, 피카소가 <알려지지 않은 걸작>을 가지고 했던 작업에 대해 앞에서 언급했지요. 당신은 그가 그 책을 위해 그렸던 동판화와 드로잉들을 기억할 겁니다. 글쎄요. 그것들은 어떤 작품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낳게 하는지에 대한 좋은 예입니다. 예술에서 그것은 하나의 끝없는 순환 사슬입니다. 예술에서의 지식은 과학에서의 지식처럼 누적되는 것이 아닙니다. 프루스트는 발자크보다 더 심오하지 않으며, 그는 단지 사물들을 (발자크와는) 다르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스타일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지요. 우리는 피카소가 세잔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과학 분야에서 사람들은 나중 것이 옛날 것보다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에 대해서는 그와 같이 말할 수가 없지요. 진보에 대한 똑같은 감각이 없는 거지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과학에서도 연구와 발견의 수준에서 보자면, 진보란 게 도대체 존재하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군요. (196)

[이 책에서 우리는 진화를 계통발생적 선택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구조적 표류로 보았다. 이때 환경 이용을 최적화한다는 뜻에서 '진보'란 없다. 유기체와 환경의 구조접속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적응과 자기생성의 보존이 있을 뿐이다.(앎의 나무 134)]
진보는 없다. 불수자성 수연성

14.
브라크는 이렇게 말했지요. "메아리가 메아리에 답한다. 모든 것은 반사한다."

네, 바로 그겁니다. 그거 참 멋진 인용이군요. 왜냐하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예술가로부터 다른 예술가에 이르는 일종의 메아리지요. (197)

[양경쌍조]

15.
당신은 이 말을 예술적 과정에 대한 적절한 정의로 받아들일 수 있나요?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당신에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나는 분명하게 정돈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못 되므로, 내가 무언가를 애써서 창조한다는 것은 일종의 끊임없는 폐기의 과정에 따른 것입니다. 두 가지 일들이 유효하지요. 즉 반향과 거부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모든 것과 내게 영향을 미친 모든 것의 조합이지요. (197)

[마음은 내가 지은 인연의 총체. 한 생각 역시 그렇다.]

16.
맞습니다. 전시회를 조직한 사람들에 따르면, 내 그림들은 충분히 초현실주의적이 아니어서 사실상 거절당했지요.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죠. 내 그림들은 전혀 초현실주의적이지 않았지요! 사실, 초현실주의자들과 나의 관계는 약간 복잡합니다. 나는 내가 정치, 종교 및 예술에 걸쳐서 기존 제도에 대한 반항의 수단으로 그 운동이 표방했던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그림들은 실제로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글쎄, 아마도 내 초기 작품에 약간의 영향을 끼쳤는지도. 심지어 1946년의 <회화>에서도. 그러나 궁극적으로 내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자의 그림과는 분명히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36년의 전시에서 내 작품을 퇴짜놓았던 사람들이 옳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나는 초현실주의 화가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건가요?

아마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에 의해서 (199)

17.
네. 추상 미술은 내겐 하나의 손쉬운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그림 그리는 재료 자체가 추상물이지요. 그런데 회화란 단지 물질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물질과 주체 사이에 벌어지는 어떤 갈등의 결과이지요. 거기엔 이른바 긴장을 존재하는데, 나는 어쩐지 추상 화가들은 이러한 갈등의 두 가지 측면 가운데 하나를 처음부터 제거하고 시작한 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듭니다. 즉, 오로지 물질만의 그 형태와 규칙을 지시하지요. 나는 그것을 하나의 단순화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형상은 매우 중요하는걸 또한 나는 깨닫습니다. 추상은 한 번도 내게 충분한 적이 없었지요. 그것은 결코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추상은 근본적으로 회화를 순수하게 장식적인 어떤 것으로 환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200)

18.
당신은 풍경화보다 인물 구상화를 높이 평가하시나요?

네. 그런데 그건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인간으로서, 나는 사람들의 재현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화의 영역 안에서도 당신은 특히 자화상에 관심이 있지요?

아니오, 특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친구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지요. 나는 그들을 잘 알아야만 하고, 그리고 그들을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201)

19.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자화상]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단지 하나의 모델에 불과하지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데 항상 성공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게 자화상이든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의 초상이든 간에 문제는 똑같습니다. (202)

 
20.
앞에서 당신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미지가 당신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요. 그렇게 말할 때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나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봅니다. 삶이 당신의 눈 앞에서 펼쳐지고 당신은 그것을 보는 거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이미지들에게 폭격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마음에 들러붙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미지는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정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어떤 이미지들이 다른 이미지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따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에 대해서 무언가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스핑크스의 이미지를 보았다는 사실이 당신이 거리에서 마주친 어떤 남자를 보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요. 나는 모든 이미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그밖의 모든 것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지각은 완전히 달라지지요. 어떤 이미지들이, 아마도 내가 보는 모든 것이, 알게 모르게 나머지 모든 것을 수정합니다.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이미지들이 있지요. 그건 위대한 수수께끼이나, 나는 확실히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지요.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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