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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여러 번 반복했듯이 행동이란 관찰자인 우리가 유기체와 환경을 동시에 살핌으로써 나타나는 상대적인 현상이다. 이때 유기체가 보일 수 있는 행동방식들의 범위는 유기체의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왜냐하면 이 구조가 유기체의 상호작용 영역을 일일이 규정하기 때문이다.

2.

그런 까닭에 우리는 같은 종에 속한 유기체들 각자의 특수한 상호작용의 역사와 상관없이 어떤 구조가 발달함을 관찰하면 그런 구조를 가리켜 유전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생긴 행동방식을 가리켜 본능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는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어머니의 젖을 누르고 꼭지를 빠는데, 이 행동은 아기가 자연적으로 태어났건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났건 뮌헨의 고급병원에서 태어났건 아마존 지역의 열대림에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나타난다.

3.

다른 한편으로 같은 종의 개체들이 보이는 행동이 오직 상호작용의 특수한 역사가 있을 때만 발달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할 때 사람들은 그런 구조를 가리켜 개체발생에 따른 것이라 하고 또 그런 행동방식을 가리켜 학습된 것이라 말한다.
앞 장에서 예로 든 늑대소녀는 보통 아이들처럼 사회적 상호작용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다리로 달리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없었다. 달리기같이 매우 기본적인 것에서조차 우리는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인간적 맥락에 얽매여 있다.

4.

그런데 타고난 행동과 배운 행동이 행동 자체로서 지니는 본성과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의 측면에서는 서로 구분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차이는 오직 행동의 바탕이 되는 구조의 역사에 있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타고난 것으로 분류할지 배운 것으로 분류할지는 우리가 그 행동의 구조적 역사를 살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신경계 작업을 오직 현재 속에서만 관찰할 때는 이런 구분이 불가능하다. (앎의 나무 194)

5.

앞 장에서 보았듯이 둘 이상의 유기체들이 재귀적으로 상호작용할 때 사회적 접속이 생긴다. 유기체들은 접속을 통해 서로 엮인 채 저마다 자기생성을 실현한다. 이 사회적 접속의 영역에서 생긴 행동방식이 이미 말한 의사소통적 행동이며, 그것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배운 것일 수도 있다.
관찰자인 우리에게 본능적인 행동과 배운 행동은 모두 이런저런 활동들의 조정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관찰자는 그것들을 의미론적 개념들로 기술하지 모른다. 다시 말해 유기체들 사이의 구조접속이 지닌 역동성이 아니라, 마치 의미가 상호작용의 전개과정을 결정하는 것처럼 기술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의사소통적 행동은 그 바탕을 이루는 구조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다른다. 타고난 행동은 유기체가 발달할 때 개별적인 개체발생과 관계없이 생긴 구조에 따라 좌우된다. 배우 의사소통적 행동은 유기체의 개별적인 개체발생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특수한 역사에 따라 좌우된다.
이 두 번째 경우에 관찰자는 행동을 의미론적으로 기술하기 쉽다. 그러면서 의사소통적 행동의 의미가 유기체들의 개체발생을 통해, 심지어 유기체들이 공존해온 특수한 역사에 따라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배운 의사소통적 행동을 가르켜 우리는 언어적 영역이라고 부르겠다. 이것은 언어의 바탕을 이루지만 아직 언어 자체는 아니다.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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