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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가지 모습도 집착하지 않는다. 우리 삶을 이루는 근본바탕은 虛妄이지만 바꿔말하면 어떠한 것도 집착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원래적 삶의 바탕이다. 그것이 수승한 다른 어떤 것보다 뛰어난 것이다. 일체 모든 삶에서 자유롭게 살게되면 동시에 허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삶에 대해서 편안한 삶, 안락하고 열반의 삶을 살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 자체가 근원적으로 허망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 허망이라고하는 단어도 우리가 생갹해 왔던 과거의 기억들에 연속성이 삶에 기초해서 그런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허망하다라고 하는 의미에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허망하기는 하되 그 허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적 의미체계의 허망과는 전혀 다른 허망이다. 이것이 허망하면서 虛라고 하는 것은 비어있고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를 구성하는 특정한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든 인연처에서 자기 모습을 나투는 것을 분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분별하는 바탕이 허망이니까 하나도 자기모습을 고집하지 않는 그것을 공성이기 때문에 그것을 허망이라고 부른다. 허망이란 말은 空性이다." [각주:1]   

 

T10000.0 : 허망분별이 의타기성. 허망은 공성을 분별은 인연을. 허망한 분별들이 무상. 분별이 있으되 허망한 이 허망분별은 역동하는 힘의 원천.  

 

"우리는 흔히 몸을 위해서 살고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름 지워진 나, 보이는 몸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하면 그 재미가 있고, 나를 비난하면 성질이 나는 것은 허망하지 않는 나를 설정해 놓고 그 나를 사는 것이고, 우리가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걸치는 것은 허망하지 않은 이 몸을 위해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어른은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너무너무 허망하다고 하는 것을 동서고금의 사유체계를 꽤뚫는 글들을 통해서 출가하기 전에 몸과 마음에 사무치게 느끼는 것이다. 수행 가운데서 칭찬과 비난의 내용으로 살 수 있는 내용이 끊어지는 것이고 몸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래서 올곧게 정말 허망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보니까 오히려 허망이야말로 삶의 진실인 것을 경험해서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고 집착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됐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法에 勝義는 虛妄한 것이다. 그것이 眞如다. 허망한 것이 진여다. 진여가 허망이다."[각주:2]

 

 

  1. 정화스님 <유식강의> 녹취록에서 [본문으로]
  2. 녹취록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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