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안 되면 괴로워합니다. 바라는 마음 때문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것이 윤회입니다.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음으로써 지옥도 사라지고 천당도 사라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 해탈입니다. (기도 48) 2. 내 생각에, 예를 들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욕구)을 내려놓는다는 건, 다시 말해 원하는대로 위로 받으면 천국이고 원하는대로 안돼 위로 받지 못하면 지옥 같은 감정이 드는 이 욕구를 내려놓다는 건 욕구가 꼭 원하는 대로 되야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될 것이다. 욕구로부터의 자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가짐이 아닌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윤회로부터의 자유, 해탈.
화나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기보다 괴로운 감정을 알아차리긴 쉽다. 답답하다. 서운하다. 등의 감정을 통해 괴로움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모든 괴로움은 나의 어리석은 생각,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나옴을,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드는 것임을 되새기자. 내가 내 기준을, 내가 옳다고 시비하고 있구나 하는 징표로서 괴로움을 알아차린다. 상대의 어떤 한 행동이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상황은 이렇다.[그가 나를 화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뭔가 바라는 욕구가 있는데 상대가 화답해주지 않을 때다. 이 때 욕구에 대한 화답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미처 알지 못한 상황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오해를 소통해 푼다면 욕구를 알아 화답해 ..
갈등이 발생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합리적으로 조정된 해결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떠한 성공적인 갈등 해결책도 감정적인 본성에서 연유합니다. 이것은 결코, 내가 모든 토론을 멈추고 모든 대화를 그만두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화해를 가능케 하고 두려움들로 인한 갈등에 빠져 있는 당사자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공통의 기초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이야기할 때, 그들은 우선 상호 신뢰와 존증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다른 사람의 지성을 긍정하는 것이 아마도 좋을 것입니다. 상호 신뢰가 회복된다면, 사람들은 상관적인 실재 영역에서 말해지는 것을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
에티카 5부 정리 20 주석. 1. 감정의 인식 그 자체에(정리 4의 주석 참조) 2. 우리가 혼란하게 표상하는 외부의 원인의 사상에서 감정을 분리하는 것에(정리 2와 정리 4의 주석 참조) 3.우리가 [타당하게] 인식하는 사물에 관계되어 있는 변용[감정]은 우리가 혼란하게 또는 단편적으로 파악하는 사물에 관계되어 있는 변용[감정]보다 시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에(정리 7 참조) 4. 사물의 공통적 특성 또는 신에 관계되어 있는 변용[감정]을 육성하는 원인이 다수라는 것에(정리 9와 11 참조) 5. 마지막으로, 정신이 자기의 감정들을 질서 있게 정리하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그 질서에(정리 10의 주석과 정리 12, 13 및 14도 참조) 그러나 감정에 대한 정신의 이러한 능력을 더 잘 이..
에티카 5부 정리 15.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감정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감정을 더 많이 인식하면 할수록 더욱더 신을 사랑한다. 증명 :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감정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기쁨을 느끼며(제3부 정리 53에 의해), 이 기쁨은 신의 관념을 수반한다(정리 14에 의해). 그러므로 (감정의 정의 6에 의해) 그는 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같은 논법에 의해)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감정을 더 많이 인식하면 할수록 신을 더욱더 사랑한다. Q.E.D
기분이 나빠지는 상태는 신체의 변용의 이행의 관념인데, 보다 큰 완전성에서 작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이 신체의 변용이라면 이 이행의 관념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나는 신체가 문화적 차원의 먹는 음식과 행동과 결합해 신체의 현재의 상태를 갖고 있듯, 정신에 있어서도 문화적 차원의 교육과 사고방식이 결합해 현재의 상태를 갖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행의 기준은 정신의 차원에서는 내가 갖고 있는 현재의 생각이 건강의 근간이다. 즉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은 내 생각을 기준으로 한다. 만일 누군가의 말이 상처가 됐다면 그가 한 말은 나의 존재력을 떨어뜨림의 관념으로, 즉 감정으로 자극된 것인데, 그 감정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때 그 기준을 붙잡고 있을 때 슬픈 감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란 눈을 뜨고..
왜 기분이 나빠지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원인들의 질서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진 관계로 나는 신체의 현재 상태를 인식하고 있다. 허나 분명히 그의 말이 제1원인은 아니다[우연적 원인]. 나의 신체는 그의 말을 듣고 기분이 안좋아지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필연적 원인]. 마치 메밀 알레르기처럼 그의 말은 메밀이었고 나의 신체는 메밀 알레르기를 앓는 신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타당한 인식은 메밀을 멀리하는 것처럼 그의 그런 말을 피하는 것이다. 아니면 내 신체가 그렇게 반응하지 않도록 평소, 건강을 높은 차원으로 보강하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