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책임. 그렇다면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하는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의 결과들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상황들에 대해 의식하고 있고 자신들의 활동들의 결과들을 성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하면서 [현재의]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지 자문합니다. '자기관찰'의 순간에,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의 모든 확실성들과 안전성들은 사라집니다. 언어적 작동을 통해, 관찰을 허용해주는 어떤 형태의 응시와 자각이 발생했을 때, 그제야 사람들은 다음 단계에서 그들 자신의 선호들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책임 있게 행동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2. ..
푀르크젠 그렇지만 우리는, 지시명령적으로 간섭할 수 없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남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문제되고 있는 그 체계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합니다. 외관상 모든 지도자들, 정신공학 의사들, 그리고 성공한 판매원들은 생명체계 - 다른 사람들 - 의 행위를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보면,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성은 지식의 문제이고, 이해의 어려움들의 문제입니다. 마뚜라나 물론 사람들은 그들이 특별한 능력들과 통찰력들을 가지고 있고, 섭동을 투입으로 변형시킬 수 있고 마침내는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 이유는, "투입 개념은 직접적인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외부 세계로부터 어떤 것이 체계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무엇이 발생하고 나타나는지 결정한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결코 옹호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지시명령젹 상호작용이라는 그릇된 전제에 의존하고 모든 체계들의 '구조적 결정론'에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섭동이 나타날 때 체계는 그 체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는 실체와 마주칩니다. 섭동 개념은 구조적 결정론의 생각과 일치를 이룹니다.(함으로 118)" 대신 간섭이 아닌 섭동은, 간섭이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이 잘못된 전제에 의거해 있어 실효성이 없고 반면 법문을 반복한다든지, 묻는 말에 답을 해주는 과정은 섭동을 통해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
어쩌면 우리는 더 설명적인 사례는 잠시 접어 두고, '전통적으로 자극과 투입이라 불리고 살아 있는 존재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제 분명하게 필요해진 새롱누 개념들 및 새로운 종류의 언어라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용어들은, 그것들이 비록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에서 아직도 광범하게 유통되고 있다 할지라도, 더 이상 사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분명히, 직접적이고 단일원인적인 영향력을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이라는 잘못된 개념은 다음과 같은 대안적인 생각에 의해 바로잡혀야 합니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것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외적 작용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화를 유발하는 행위가 화를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화를 내게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나 자신을 화나게 할 순 없다. 화나게 유발할 수 있을 뿐, 화를 내는 것은 내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난 것은 화를 내는 것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결정은 내가 하고 책임은 떠넘기는 꼴이 된다. 화는 내가 내놓고 책임은 너 때문[남 탓]. 구조적 결정론의 성찰은 안을 드려다보게 한다. 유발은 유발일 뿐 결정은 내가 하므로 내 안의 체계에 눈돌리게 한다. 1. 복통 때문에 의사를 만난다고 가정해 보세요. 당신은 적절하게 진찰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맹장이 제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은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인 것처럼 다루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수술 전..
무딘 걸까. 단단한 걸까. 혹은... 그냥 바보인 걸까. 박새로이라는 한 남자가 있다. 전학 간지 5분 퇴학. 아버지 교통사고 사망. 가해자 은폐. 살인미수, 2년 징역. 전과자. 7년차 모아차린 가계의 영업정지. 누군가 그에게 어떠냐고 안부를 물어본다면 분명 그는... "끄떡 없다" 라고 대답할 것이고,단언컨대... 그 말은 참일 것이다. 그를 아는 누구나가 부정 못할 ... 행복하고 싶었다. 나를 잃지 않고, 원하는 전부를 이루고 싶었다. 힘든 나날이 있었다. 슬픈 나날이 있었다. 때로는 불안하고 두려웠다. 어떻게 버텄을까. 어떻게 버텄을까. 소중한 이들과 하고싶은 걸 하며 정신없이 보내온 나날- 행복을 찾아- 행복... 이들 곁에 있는 것. 이들과 함께 하는 것. 너와 나..
1. 나무를 나무로 체험하는 것은 폐쇄적 구조들의 상호작용으로, 나무의 실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는 나무와 나와의 연기적 상호작용에 의해 나무로 인식되는데, 나무는 그 이름이 나무일 뿐이다. 나무라는 인식의 현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나무일 뿐. 그 이름만이 독립되어 있으며 이로인해 나무를 객체나 대상으로 여기고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나무는 나무라고 이름하는 체험이며, 나무가 외따로 존재할 수 없다. 저기 있는 나무는 나무를 관찰하는 관찰자를 요구한다. 연기법은 원천적으로 관찰자에 의존해 있다. 체험의 근거가 우리 신체이기 때문이다. 2. 이것은 나무로, 저것은 꽃으로, 또 그것은 강아지로 인식되나 그 이름이 나무, 꽃, 강아지이지 그것들이 따로 있는 것..
지금 이 부연설명으로부터 우리가 얘기하던, 세계와 묶여 있음을 강조하는 태도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반복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제 주장은 우리가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가 아니면 세계와 묶여 있는가 하는 물음은 원칙상 궁극적으로 해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그런 물음을 결정할 수 있는 실험을 발명한다면 제게 편지를 보내 주세요. 하지만 저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두 가지 태도 중에서 하나로 결정을 할 수 있을 뿐이고 그리고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을 뿐입니다. (발명품 256) 그런 식이라면 당신의 윤리적 입장을 근거 짓는 문제도 아주 멋지게 해결될 듯한데요. 우리가 세계와 묶여 있다는 입장으로 결정을 할 경우 그러한 결정 자체가 근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