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많은 분들의 질문에 해답을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라고 말하는 것뿐이에요. 앞면만 보는 사람에게 "뒷면은 어때요?"라고 묻고 이쪽만 보는 사람에게 "저쪽 면은 어때요?"묻고, 윗면만 보는 사람에게 "아랫면은 어때요?"하고 묻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총체적으로 본다'고 합니다 사물의 한 단면만 보는 것을 편견이라고 하고, 총체적으로 보는 것을 통찰력 또는 지혜라고 합니다. 어느 한쪽만을 바라보며 '이것이다'라고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음으로써 자기가 문제삼던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사물의 전모를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기면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고뇌가 저절로 없어집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행복이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쏟아부은 모든 노력이 결국은 불행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기막힌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내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니라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좋은데 상대는 손해인 것은 상대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 좋음은 오래 지속이 될 수가 없습니다. 상대한테는 좋은데 내가 희생하면 내가 오래 참지 못해요. 따라서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하고남도 더불어행복해질 수 있는 길만이 이 행복을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노력을 함께해야 합니다. (행복 221) 2. 직장을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대..
1. 하지만 둘 이상이 협력을 할 때는 생산만큼이나 분배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기본적으로 너 한 마리, 나 한 마리는 먼저 가지고 증산된 한 마리를 갖고 어떻게 나눌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는 한 마리이고, 최대는 세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라는 것입니다. 이때 '내가 한 마리를 갖겠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에요. 이것은 기본 권리에 속합니다. 내가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는 것은 욕망입니다. 내가 두 마리 이상 세마리를 갖겠다는 것은 과욕입니다. 과욕을 부리게 되면 상대에게도 손실이지만 나에게도 조만간 손실로 돌아옵니다. 2.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과욕을 버려야 하고, 사회제도적으로는 과욕을 못 부리게 규제를 해야 합니다. 특히 한 마리..
사실 제 생각에 진리를 언급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인간성의 통일을 파괴합니다. 그 개념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십자군 전쟁, 끝없는 종교투쟁, 종교재판의 우울한 놀음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진리라는 이념을 폭력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박해하고 태웠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발명품 44) 2. 이러한 사유의 결과물들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오래된 히피의 슬로건 - '사랑을 하라, 전쟁말고/' - 으로 수렴될까요?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은 상이한 감정들이 상이한 가치들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따금 이러한 감정들의 실현을 억압합니다. 모든 종류의 명령들은 언제나 우리가 선전자들과 폭군들의 역할들에 운명적으로 다가가도록 부추깁니다. 그것들은 차별화에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