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살이 일체중생을 위해 행하는 보시바라밀도 중생을 위해 보시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보시바라밀이라고 이름 합니다. 남을 위해 보시한다는 것은 이미 나와 남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보살에게는 나니 남이니 하는 구분이 없습니다. 나와 남의 구분이 없는 경지에서 보면 무슨 일을 해도 그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당연한 행위입니다. 다만 나와 남을 구분하기에 바쁜 범부 중생의 눈에 '보살은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해 보시를 행한다'고 보일 뿐입니다. 왼손에 상처가 나면 오른손이 그 상처를 치료합니다. 오른손은 왼손을 치료하면서 남을 위해 희생한다든가 보시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둘은 본래 한 몸이므로 오른손은 왼손의 아픔을 함께 합니다. 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는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그렇..
이를 에서는 '법성원융무이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법의 근본이 둥글고 두루해서 두가지 모습이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상을 지으면 저절로 두 개의 상이 됩니다. 깨끗하다는 상을 지으면 반드시 그 옆에 더럽다는 상이 생기고, 선하다는 상을 세우면 그 옆에 저절로 악하다는 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두 개의 상이 생긴다는 것은 만 개의 상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실상은 만 가지 상이 다 일상으로부터 일어난 것인데 그 일상마저도 없다는 무상인 것입니다. 흔히 '불법의 이치는 청정하다'고 말할 때의 청정함은 더럽다는 말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번뇌와 분별심이 사라진 마음자리를 청정하다는 이름으로 부를 뿐입니다. '지고한 행복'이라는 말도 행과 불행의 상대적 개념의 행복이 아니라 행불행을 떠..
무위법이란, 함이 없는 법, 하나의 형상으로 정해지지 않는 법, 찌꺼기가 남지 않는 법을 말합니다. 이러한 무위법은 현실의 삶 속에서 인연 따라 갖가지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금강경 강의 143) 무위법 대로만 하면 사람 관계에서도 갈등이 일어날 게 없습니다. '내가 엄마다'하는 상 없이, 어린아이에게는 돌바줄 엄마가 필요하니가 내가 지금 엄마 노릇을 한다는 마음으로 자식에게 집착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야 아이가 성장해서 더 이상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언제라도 엄마 노릇을 툭툭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내 소임이 다 끝났으니 오히려 시원하고 가볍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다 커서 이제 엄마가 필요 없다는데도 그 옆에 계속 붙어서 '나는 네 엄마다'하고 고집하는 것이 상입니다. 회사에서 아무리 권위 있..
무유정법, 정해진 법이 있지 않다는 말은 법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정해진 법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법 또한 인연 따라 정해집니다. 지금의 인연에 따라 한 법이 정해졌다 해서 그것이 언제 어디에나 통용되는 절대적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법이 정해진다고 해서 '이것이 법이다'라고 할 만한 고정된 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병이 있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책 또한 그만큼 많습니다. 아무리 용한 처방책이라도 그것이 만병통치의 처방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인생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한 사람의 괴로움을 씻은 듯이 사라지게 한 비법이 있다 한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처방이 되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여래의 처방책은 무수한 상..
[마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4 묘향무주분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법에 머문바 없이 보시를 행할지니,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법에 머물러 보시하지 않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보시하되 상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을 가히 생각하여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남서북방 사유상하 허공을 생각하여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
선생님의 이론들을 연대순으로 그리고 발표 순으로 정렬하는 관찰자는 선생님의 발전에서 네 개의 서로 다른 단셰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선생님은 경험주의적 생물학자로서 실천하는데, 실험실에서 개구리들, 비둘기들, 도롱뇽들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신경해부학 영역에서 산출된 결과들을 출간합니다. 다음에 선생님은 살아 있는 존재가 그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고 생산하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계되는 생물인식론을 전개합니다. 객관성의 이념에 대한, 그리고 진리의 광신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이 그 뒤를 따릅니다. 즉 생물윤리학의 단계입니다. 선생님은 절대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물학적으로는 옹호할 수 없는 신념이 어떻게 다른 노선들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들을에 대한 억압을 낳게되는지 상술합니다. 마지막 단계로 네..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니었답니다. 나는 첫 논문을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에게 직접 보냈고, 그의 도움으로 그 논문은 1975년 지에 실려 간행되었습니다. 분명 몰이해의 국면이 있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자기 생산에 대하여 처음으로 '생물학 협회'에서 강연을 하고 내 생각을 상세하게 제시했을 때, 한 친구가 나중에 내게로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뚜라나, 뭐가 문제야? 어디 아파? 수많은 과학자들이 내가 제시한 것에 어떠한 직접적인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작업에 대한 비판적 논평들은 언제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반대들과 주장들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