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세계 : 중도 연구 노트
누군가가 나를 우습게 본다고, 내가 우수운 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보기에 우수운 거지. 나는 나입니다. 물론 기분이 상합니다. 화가 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손봐주거나 입틀막하면 나는 독재자가 됩니다. 그의 자유를(마치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권력처럼 말이죠. 우습게 보든, 우러러 보든 그건 나의 인성이 아닙니다. 나는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갑니다. 내가 보기에 예쁘게.
욕망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은 다르다. 욕망은 집착하지 않는다. 소유,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소유는 불가능하다. 두 눈을 뜨고 꾸는 꿈. 내가 보기에 예쁘다. 대상도 주체도 없이 욕망 밖에 없다.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금강경 사구게
할!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내가 보기에 예쁘다. 나는 공하다, 즉 無我무아.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복덕은, 어떠한 결핍도, 어떠한 불가능성도 내포하지 않으며 쾌락으로 측량할 수도 없다. 그 기쁨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 가득 체워 보시하는 복덕보다도 더 크다.
쾌락은 긍정적 욕망의 연속적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최대한 지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처럼 보이는, 욕망에 내재하는 기쁨이 존재한다. 그 기쁨은 어떠한 결핍도, 어떠한 불가능성도 내포하지 않으며 쾌락으로 측정할 수도 없다. (들뢰즈가타리, 천의 고원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