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불복종일 뿐, 본래 죄란 없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마뚜라나의 지적처럼, '권력은 복종이 있을 때에만 출현한다.'고 통찰할 때, 죄의식은 복종을 조장하는 권력과의 은밀한 내연관계. 감춰지고 위장된 이 관계를 직시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노예에서 해방된, 주인으로 사는 삶이 열린다면. 죄를 바라보는 불교철학과 스피노자 철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그 경계에는 정치가. 스피노자의 자연상태와 국가상태 사용자 T1000.0 2012. 12. 20. 13:13 제4부. 정리 37. 주석 2: 제 1부의 부록에서 나는 칭찬과 비난이 무엇이며, 공적과 죄가 무엇이고, 정의와 불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로 약속했다. 칭찬과 비난에 관해서는, 제3부의 정리 29의 주석에서 설명했다.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여기가..
사람들이 흔히 그런 말을 해. 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보냐고. 논리를 전개하는데 태도를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흔히 그런 반론을 하지. 아니야. 달을 자지로 가리키면 자지를 본다.(웃음) 태도부터 컨텐츠다. 그래서 난 좋은 컨텐츠의 가장 첫번째 조건은 애티튜드라고 생각해. 두번째는 대중언어로 말하는 자세. 지금 진보 진영에 절대 부족한 거지. 말의 내용 이전에 말의 형식부터가 컨텐츠야. 형식은 내용에 선행해서, 의식이 그 내용을 수용할 자세를 지정해준다. 형식과 내용은 결코 별개일 수가 없어. 이걸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 진보 진영의 차려 자세는 사람의 의식부터 긴장시키고 내용이 들어오기도 전에 피로하게 만든다. 그래서는 소통이 시작조차 될 수가 없어. 그렇다면 의 전달자와 애티튜드와 컨텐츠로 새..
개인이, 기업이, 정부가 행복하고 자유롭게 되기 위해선, 시스템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따로 다른 무엇을 찾기보다. 방점은 건강하게. 미래가 아니라 당장. 행복하고 자유롭게 건강하게. 인연의 1인으로의 개인 몸맘의 건강, 2연으로서 사회 시스템의 건강. 기업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그걸 요구해서도 안 되고, 다만 그들이 시장의 룰을 지키며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 결과적으로 국가에 이익이 되도록 시스템을 건강하게 만들면 되는 거라고, 난 생각해. (닥치고 정치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