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완전과 불완전은 실제로 사유의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가 동일한 종種 또는 유類에 속하는 개체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습관적으로 지어내는 개념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앞에서 (제2부 정의 6) 실재성과 완전성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에 있는 모든 개체를 가장 보편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하나의 유에, 말하자면 자연에 있는 모든 개체에 예외 없이 관계하는 유의 개념에 귀속시키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에 있는 모든 개체를 이 유에 귀속시켜 서로 비교하고, 또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많은 유성有性이나 실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한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도 완전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한계, ..
그러므로 신은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은 존재함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작용함에 있어서도 아무런 원칙이나 목적을 갖지 않는다. 목적원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인간의 충동이 어떤 사물의 원칙 또는 제1원인으로 생각되는 한에 있어서 인간의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거주는 이 또는 저 가옥의 목적원인이었다고 우리가 말할 때, 확실히 우리는 인간이 옥내생활의 이점을 표상함으로 인하여 가옥을 건축하려는 충동을 가졌다고 이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거주는, 그것이 목적원인으로 생각되는 한에 있어서, 이러한 특정한 충동에 지나지 않고, 이 충동은 실제로 작용원인이며, 제1원인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보통 자기의 충동의 원..
당신도 알다시피 비록 그가 팝 아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지적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성은 결코 예술을 만든 적이 없으며 그림을 만든 적도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림을 만듭니까? 그것에 대해선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단순히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림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겁니까? 가슴으로부터, 위장으로부터, 아니면 대장으로부터 나온단 말입니까? 그게 어디서 나오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107) T. 그림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도 마찬가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소위 영감과 본능에 의해 그려지는 그림에는 근원적인 모름이 있다. 정말 그림이 어디서 나오는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그 원인들을 모른다. 다만..
하지만 당신도 아시겠지요? 우리가 인상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놀라운 일은, 그 모든 화가들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그들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를 알아차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의를 내리는 데 신중해야 합니다. 위대한 화가는 결코 하나의 범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화가들은 인상파이고, 다른 사람들은 표현주의자들이며, 그리고 또 다른 화가들은 입체파라고.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아무 말도 안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당신은 그림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어떤 양식을 단지 자기 동일시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화가의 잔인한 손 100) T. 정의 내리기, 이름 붙이기의 정의, 이름은 이름으로 환원되는 동일시를 방조하기 때문..
1.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솔직히 난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결코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진실로 말하건대, 그것에 대해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68)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젊은 화가들이 당신을 모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당신은 인정합니까? 네. 그렇구 말구요. 그런데 그게 정상입니다. 항상 그래 왔으니까요. 젊은 사람들은 그들의 선배나 혹은 선조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내 생애의 어떠 시점에서 피카소는 내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요. 아마도 '영향'이란 말은 정확한 단어가 아닐 것입니다. 확신하건대, 나는 피카소가 이 말을 썼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나로 하여금 어떤 것을 보도록...... 아니, 보지 않도록 도와주었다고 말하고 싶군요. 꼭..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설법 제일 부루나는 서방의 수로나국으로 법을 전하러 가겠다고 부처님에게 청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수로나국 사람들은 난폭하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부루나여, 그 나라 사람들은 매우 사납다고 들었습니다. 그대가 가서 법을 설하면 그들은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비난하고 욕을 할 것입니다." "부처님, 그들은 저를 비난하거나 욕할 뿐이지 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루나여, 그들은 매우 사납다고 들었습니다. 그대가 법을 설하면 그들은 그대를 때릴지도 모릅니다." "부처님, 그들은 저를 때릴지언정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루나여, 그들은 매우 사납다고 들었습니다. 법을 전하는 그대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부처님, 이 몸은 무상한 것입니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죽기 마련입니다..
이는 모두 같은 것을 근본으로 하여 다른 것이 되며, 하나를 근본으로 해서 하나가 아닌 것이 나타나는 이치입니다. 근본 이치에서 본다면 본래 같은 것도 없고 다른 것도 없습니다.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이름일 뿐이지, 같거나 다르다고 할 만한 본질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존재에서 서로 다른 많은 존재가 나오고, 서로 다른 많은 존재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이룹니다. 하나로부터 많은 것이 나오고 많은 것으로부터 하나가 나옵니다. 하나는 하나 아닌 것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모든 것이 아닌 것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다, 둘이다 하는 구분은 담나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하나와 둘을 판단할 만한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만 지금 인연에 따라 이름 불릴..
세 형제가 있습니다. 큰아이는 심부름을 하기 싫어합니다.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살살 달래도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매를 들고 야단을 쳐야만 심부름을 합니다. 둘째도 심부름하는 걸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맛있는 걸 사주겟다는 말로 달래면 꼭 사줘야 된다는 다짐을 몇 번씩 하고 나서 심부름을 갑니다. 그런데 셋째는 형들과는 다릅니다. 특별히 야단을 치거나 먹을 것으로 꾀지 않아도 단번에 예! 하고 다녀옵니다. 엄마를 도와드리는 일이니 당연히 자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첫째가 심부름을 갔다 와서 보니 심부름을 하지 않은 동생들도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듣지 않는 겁니다. 그걸 본 첫째는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가지 말걸. 엄마한테 속았다'하고 후회하고 억울해합니다. 둘째가 심부름을 다녀와서 군것질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