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법이 무아'라는 것과 '일체 법이 없다'는 것은 그 뜻이 전혀 다릅니다. 그 둘을 혼동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약이라고 부르는 물질은 실은 그 안에 약이라는 실체나 근원이 있지는 않습니다. 약이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은 이것이 독이라는 뜻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도 아닙니다.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영원불멸하는 고정된 성품이나 역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조건과 인연 속에서 때로는 약성으로 작용하고 때로는 독성으로 작용하는 것이 참모습입니다. 다만 지금 여기에서의 쓰임에 따라 약이라 불릴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이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동시에 놓인 상황과 인연에 따라서는 '이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만 '이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 ..
금강경의 설법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부처님이 줄곧 말씀하셨던 것은 '정해진 법이 있다고 할 것이 없다'는 무유정법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주의해서 볼 것은, 어째서 '법이 없다'하지 않고, '법이 있다고 할 것이 없다'라고 했느냐는 점입니다. 무유정법은 '있다'는 병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없다'는 상에 빠지는 것도 경계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금강경 강의 436) 2.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정의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상응이론적 관점에서 정의를 하건 정합론적 관점에 됐건 뭐가 됐건 진짜 제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게 되면 진리라는 개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늘 다른 색깔을 띠게 되는 철..
흔히들 '나도 속세의 인연을 다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 여기서는 도저히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산속에 가야 도를 얻을 수 있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깨닫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가족과 재물과 사회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생각은 얼핏 보면 부와 명예와 인간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초연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외부 조건에 행복의 근거가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깨달음과 거리가 먼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외부 요인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아서 살아가다가 그것이 뜻대로 안 되니 그런 것을 다 놓아버리는 게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밧줄에 매달려서 꼭 움켜쥐고 있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매달려 있기 힘드니 아예 밧줄을 놓아버리는 게 행복이라고..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른다는 앎을 알게 되는 앎의 앎[자신의 앎을 깨달으므로서]이, 무지에서 무지를 떠나지 않으면서 무지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2. 1977년 어느 날 나는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이유는 내가 다음과 같이 세 번의 강의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강의는 창세기와 원죄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나는 사과를 따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준 이브가 하나의 사례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의 계율에 맞선 그녀의 반란이 인간의 자기인식과 책임 있는 행위를 위한, 낙원 - 자기인식이 없는 세계 - 으로부터의 추방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함으로 284) 3. 성경에 씌어 있듯이 아담과 이브는 선악..
코로나로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이 슬픔을 어떡하죠? “코로나 바이러스로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치료 중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완치 후 퇴원했지만 하루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이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스님은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며 잠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질문자를 위해서도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19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도 이만한 피해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조용한 전쟁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기치 않게 원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상황은 이미 일어났다'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명제입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한 상황이 지금의 내 현실입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한들 모두 번뇌에 불과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맞지 않아'하고 고집하는 마음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세상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와도 맞추어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내 의지대로 상황을 바꿔 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바꿔 살고자 하면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작은 나무막대기가 필요한데 큰 막대기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칼로 잘라내 작은 나무막대기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여건을 바꾸려면 노력과 수고를 당연히 여기고 기쁘..
1. 형편이 급한 친구가 있어서 그에게 백만 원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가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자진해서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내 마음에는 '내가 너를 도와줬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게 보통입니다. 반대로 내가 형편이 어려워 친구에게 백만 원을 빌려 썼다면 나중에 돈을 갚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내가 그에게 백만 원을 주었다는 생각이 남지 않습니다. 그 돈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으니 당연합니다. 그의 돈을 그에게 돌려준 것뿐이니까요. 2. 이렇게 그 돈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줄 알면 돈을 주고도 주었다는 마음이 일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그 돈이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그에게 돈을 주었다는 마음이 남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준 뒤에 도와줬다는 생각이 자꾸 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