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세계는 말이나 생각으로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말과 생각으로 부처님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왜냐하면 말이 갖는 한계를 여실히 알지만 또한 그것이 우리 일상에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비낟.말고 생각이 비록 부처님의 세계인진제를 나타내기에는모자라지만 부처님세계에 이르기까지 중생의 처지에서 보면 말과 생각이 훌륭한 방편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법성게 178)
연기실상의 한 법계에서 보면 이와 사는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낱낱 현상의 나툼인 사 그래로가 연기실상의 이이기 때문입니다. 곧 이가 있고 사가 있는 것도 아니며 사가 있고 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와 사는 원융한 한 모습이며, 사를 관통하고 있는 이인 공에 의해서 사사가 다시 원융한 한 모습이 됩니다. 이 사사에 원융한 살이 삼매의 삶이며, 무량한 여래의 생명이 중생과 사물마다에 그대로 나툰 것입니다. 온갖 모습이 그래로 부처님의 나툼이기 때문 사물과 사물, 중생과 중생의 원융한 모습이 아니라 부처님과 부처님의 원융한 모습입니다. 이를 부처님의 덕상인 지혜광명이 서로서로 걸림없이 중중무진으로 겹쳐 있는 것이라 하여 불계佛界연기라고 합니다. (법성게 176)
마음이 마음인 데서 보면 인식 주관으로 한정된 듯하지만 이 마음이 이대로 온갖 대상이 되고, 대상이 대상인 데서 보면 인식 대상으로 한정된 듯하지만 이 대상은 그대로 몯느 만상을 ㅗ나툰 마음이니 마음에서 대상을, 대상에서 망므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를 명연冥然, 독 차별을 꿰뚫고 혼연일체로 하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음과 대상은 또한 그대로 진여공성의 자기 나툼이니 공성인 듯하면서 마음으로 대상을 나투고, 마음인 듯 대상인 듯하지만 그대로가 공성을 나투고 ㅣㅇㅆ으니, 공성과 그 나툼의 관계는 하나 ㅗ디어 분별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理와 사事로 나누고는 있습니다만, 이 그대로 사시이고 사 그대로 이인 상태이기 때문에 부득이 이와 사로 나눈 줄을 알아야겠습니다. 이것은 ..
아울러 맑고 고요한 마음, 빈 마음으로 생사의 모습을 지켜보게 될 때 집착으로 이루어진 변치 않는 업인 행의 작용이 그침과 아울러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의 자기 본디 흐름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무상이 그 극에 이르러 오히려 고요한 부동不動의 미묘한 곳임을 보게 되면서 무상과 부동의 끊임없는 교류, 연속과 불연속이 함께하는 것이 삶의 진실임을 알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동에서 부동을, 부동에서 동을 자유롭게 넘나들어 동과 부동의 어느 한 쪽에 치우지지 않는 중도실상의 면목을 알게 됩니다. 이 중도실상의 비추어 자아란 동으로서 동일하거나 부동으로서 동일한 실체를 갖지 않고 인연조건에 따라 제 못브을 갖기 때문에, 행에 의한 습관적 집착에 의해서 동일한 실체로 인식되고 있는 자아가 없음을 확실히 체득하게 됩니..
온갖 삶의 모습은 단지 연기관계에서 생성과 소멸일 뿐입니다. 연기 관계에서 조건의 결합에 따라 생성과 소멸의 모습만 있는 것이 지금 여기의 우리이며 이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등으로 집착하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행의 집착에 따라서 생사가 불만족스러울 뿐입니다. 불만족스러운 생사의 모습은 생사의 본 못브이 아니라 집착하는 작용인 행의 마음 작용에 의해서 잘못 인식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앞서 괴로움의 발생이 생사에 있지 않고 생사를 색칠하는 업의 활동인 중생의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생사가 불만족으로 다가올 때는 우리들의 진실한 삶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변계소집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이때..
이와 같은 내용을 화엄에서는 1에서 10까지의 숫자를 보기로 들고 있습니다. 1이란 그 자체로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2에서 10까지의 숫자가 뒷받침 되어야만 1이란 숫자가 뜻을 갖게 됩니다. 아울러 바탕 숫자인 1이 없으면 2에서 10까지의 숫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1이 모든 숫자 가운데 하나이지만 동시에 1이 모든 숫자를 이루게 하는 점에서 보면 1이 모든 숫자가 됩니다. 또 10이라는 숫자도 1과 그 밖의 숫자에 따라 있게 되었지만 그 또한 모든 숫자를 성립시키면서 모든 숫자가 됩니다. 이와 같은 관계에서 보면 낱낱 숫자는 자기의 얼굴을 가진 전체 숫자 가운데 하나이면서 동시에 전체 숫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서까래와 집과의 관계, 수행자의 앉아 있음이 우주법계의 앉아 있음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