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인연 따라 문득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일어났을 때는 있는 것 같지만 사라지고 나면 없습니다. 때문에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것으로, 마음 그 자체는 어떤 모습으로도 머물지 않습니다. 있는 데도 머물지 않고 없는 데도 머물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서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작용만이 있을 뿐 작용 뒷면에 체성으로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문득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여실히 알아차려 수행이 익어갈 때, 의지 작용인 고정된 대상을 지향하는 중생심이 쉬게 되고 마음이 모두를 이루고 있을믈 보게 됩니다. (법성게 220)
대상을 망상으로 규정하여 망상이라는 상을 갖고, 끄달림의 대상을 갖게 되었기에 그것이 망상이 되고 상이 되고 끄달림이 됩니다. 그래서 망상을 없애려는 것만이 아니라 진리를 구하려는 것조차 큰 망상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이들께서 진리를 구하려 하지 말고 빈 마음으로 쉬고 쉬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본바탕은 얼음과 물의 접면과 방을 나누는 벽과 같이 인연에 따라 모든 세계를 이루는 공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결정된 상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연의 순간 홀연히 시공과 상을 나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공과 상이 무시공이며 무상일 수 있습니다. 무시공과 무상이 공이면 시공과 상이 색입니다. 나툰 시공과 상은 공이고, 공에서 시공과 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날..
생사란 삶의 본디모습이고 생사 그 자체가 앞서 말한 공의 접면입니다. 곧 생이면서 사이며 사이면서 생으로 존재하고, 아울러 생사이면서 열반이며 열반이면서 생사입니다. 생을 좋아하거나 사를 싫어함은 생사를 샗어하고 열반을 좋아함과 같으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단지 의지작용일 뿐 생사와 열반 그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망상을 없애려 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이 무념무심으로 깨달은 이의 삶"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법성게 217)
1. 마치 0도에 맞추어 물과 얼음이 교차하듯 시공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시공을 이것과 저것의 관계에 맞춰 공동의 시공을 연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공이 있되 시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공도 또한 사람의 조건에 따라서 그렇게 있기 때문입니다. 시공이 사람의 의식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의식의 흐름이 시공을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법성게 216) 2. 이와 같이 시공과 시공에서 발생한느 모든 존재들의 변화는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몯느 존재들의 변화가 곧 시공입닏. 그래서 시공은 몯느 존재들만큼이나 끝없이 겹쳐 있습니다. 시공과 사물들이 함께하는 관계인 중중무진의 그물망은 한 순간도 일정하게 고정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관계를 이루는 하나의 그물코에 해당되는 사물이 변하..
예를 들어 봅시다. 물은 0도가 되면 얼기도 하고 녹기도 합니다. 얼음에서 물로 물에서 얼음으로 변하는 순간은 얼음도 물도 아니면서 또한 물이면서 얼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의 방을 나누는 벽은 방 A에 속하면서 동시에 방 B에 속하면서 동시에 방 B에도 속하기 때문에 이 때의 벽은 A이면서 B[非A]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의 성과에 의하면 물질의 본질도 고정된 것이 아니고 물질이라고도 물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더구나 이와 같은 관찰은 관찰자가 물질의 어떤 특성을 보려 하는가하는 의식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과 파도, 얼음과 물의 접면, 방A와 방B의 접면, 그밖의 많은 것들과의 접면에서 보면 한 곳에 한없는 인연들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낱낱은..
닫힌 마음의 해악이 원수로부터 해침을 받는 것보다 더 크다. - 부처
우리가 지금까지 부질없이 부처를 구하고 열반을 이루려고 이곳 겆곳으로 다니던 마음을 쉬는 순간이 본디 마음자리입니다. 이 마음자리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고 항ㅅ아 법계를 꿰뚫고 여여히 제 모습을 인연따라 나투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기서 비록 본디 마음 자리에 돌아온다고 했지만 중생이 본디 마음자리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에 온다고 하는 상이나 떠난다고 하는 생각이 있으면 안 됩니다. 가고 옴이 본디 한 자리입니다. 중생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산이 움직이는 것이고, 산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법계가 움직이는 것이고, 법계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떠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것이 부동심이고 부동심의 법계를 비추는 해인삼매입니다. (법성게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