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축구일 뿐이다 1골 넣었다고 이긴 게 아니고 1골 먹었다고 지는 게 아니다. 경기가 끝났다고 이긴 게 아니고 경기가 끝났다고 지는 게 아니다. 시즌이 끝났다고 이긴 게 아니고 시즌이 끝났다고 지는 게 아니다. 경기가 계속되는 한 이긴 것도 지는 것도 아니다. 시즌이 계속되는 한 이긴 것도 지는 것도 아니다. 축구는 계속되야 한다. 축구의 흐름 속에 이기고 지고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단 한 경기도 축구는 똑같은 적이 없다. 축구에는 무상無常한 흐름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축구무상蹴球無常이 즐겁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축구의 아름다운 플레이에 열광한다. 선수들과 관중들과 축구팬들이 하나로 된 사랑이 아니고선, 축구는 이미 중단되고 말 것이다.
1 내가 그 모든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채워 보시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신통이 있어 전생의 비밀과 달마의 까닭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도를 깨달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
대상을 보는 행위와 대상은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상을 비추는 마음의 대상이 있으며 대상만이 따로 있지 않다. 대상은 언제나 대상을 체험하는 행위 속에 있다. 대상이 거기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내가 보니까. 즉 내가 보는 체험과 대상은 분리되지 않는다. 거꾸로 대상은 체험되어지는 것이다. 대상이 따로 있지 않다. 대상은 단 한번도 체험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이 저기 있음을 전제하는 것은, 대상이 따로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다는 체험을 통하지 않고 체험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미 전제된 확실성에 불과하다. 그 누구도 이 확실성을 체험 없이 증명할 순 없다. 신이라면 몰라도. 이 점은 너무나 당연해서 깨닫기가 어렵다.
온 우주 그대로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인 것을 본래면목이라고도 하고 이理라고도 하며 또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엄에서 삼계가 단지 마음[三界有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상을 떠나 거울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상이 마음의 얼굴이라 하여 '두 거울이 마주 보고 서로 비춘다[양경쌍조]'라고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마음과 대상이 마음이라고 하는 하나 된 장에서 마음과 대상일 때의 마음이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지, 대상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제 마음의 얼굴을 알 수 있습니다. '갑'이 보이면 '갑'이 마음의 얼굴이요. '을'이 보이면 '을'이 마음의 얼굴입니다. 잠시도 멈추지 않..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