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리는 공하다. 맞고 틀리고, 옳고 그름이 없다. 헌데 한 소리가 어느 음계로 배치되느냐에 따라 맞고 틀리고가 생긴다. 어떤 소리는 어색하다. 이상하다. 불협화음이다. 즉 어떤 음계[인연]냐에 따라 옳고그름이 정해진다. 그러나 키가 바뀌면 옳고그름도 바뀐다. 옳고그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소리 자체는 공하다. 사람마다 자기의 음역에서 목소리를 낸다. 가령 저 사람은 C키로 생각하고 말하고 나는 Bm키로 생각하고 말한다. 나의 음역대로 듣기에 저 사람의 소리는 이상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코드대로 소리내고 있는 것이다. 틀린 소리가 아니다. 내 귀에 어색하게 들릴 뿐이다. 내 귀에 이상하단 이유로 그의 목소리가 틀렸다고 말한다면 그의 음역을 무시하고 하나의 코드만을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리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본다. 우리가 보는 것이 거기 있다고 추론한다. 우리가 보는 것이 거기 있다고 추론하는 실재표상을 환상처럼 본다. *환상처럼 봄의 핵심은 실체는 없는데 작용은 있다는 것이다. 작용은 인과를 만든다. 인과는 사실을 만들고 사실은 공하다. 이를 본다는 것은 환상이 아니며 환상이 아닌 것도 아닌 환상처럼 보는 중도, 다시말해 환상에도 떨어지지 않고 환상이 아닌 것에도 떨어지지 않는 중도의 줄타기 곡예가 필요하다. 선사들이라면 이렇게 말한다. "환상이라해도 30방, 환상이 아니래도 30방이다. 말해보아라."
나라고 할 게 없는 고로 나의 것도 없다. 실체가 있어야 소유할 것인데 그것이 없으니 소유는 불가능하다. 다만 소유라는 분별이 있을 뿐. 해서 이 분별은 집착할 것이 아니다. 본래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잡히지 않으며 얻을 것도 없다. 분별은 그냥 문화이자 관습일 뿐 법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곧 시들 꽃에 누가 집착하겠는가? 또한 아름다운 꽃을 저버리겠는가? 모든 것은 변한다. 내가 보기에 가치를 둘 것은 변하는 것의 소유가 아니라 관리다. 관리는 집착하지 않으며 소홀히 해서도 안된다.
1. 노동을 하게 되면서,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서, 부끄럼 없이 행하던 성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면서 인간은 동물성을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동류로 간주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인간은 동굴 벽화 시대 (이때는 후기 구석기 시대이다)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의 인간만해도 이미 종교성을 획득한 인간이었다. (에로티즘 33) 2. 첫 번째 강의는 창세기와 원죄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나는 사과를 따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준 이브가 하나의 사례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의 계율에 맞선 그녀의 반란이 인간의 자기인식과 책임 있는 행위를 위한, 낙원 - 자기인식이 없는 세계 - 으로부터의 추방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있음에..
연기법에서는 세상 모든 존재를 사건의 흐름으로 본다. 연기법에 의하면 세상에 실체를 가진 존재는 없다. 세상은 사건의 집합이고 사건의 흐름일 뿐이다. 다만 인과관계로 맺어진 사건들이 일정한 시간 동안 지속되어 하나의 흐름, 즉 사건의 흐름을 형성하면 사람들은 이 '사건의 흐름;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연기법에 의하면 미시세계의 존재도 거시 세계의 존재도 그저 사건의 집합이고 사건의 흐름일 뿐이니 여기서 어느 것이 허깨비이고 어느 것이 더 실제적인 존재인가 하고 논할 바가 못된다. 실제적인 존재라고 본다면 그것은 범부의 착각일 뿐이다. 범부의 착각이라는 것은 범부의 마음이 범부가 보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으로서 폰 노이만의 주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미시세계도 거시세계도 '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