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자유롭다. 입는 옷이 브랜드인지 브랜드 아닌지를 분별하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살은 고급양복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기에 고급양복을 입을 수도 있고, 안 입을 수도 있다. 인연을 따라 입을지 안 입을지를 선택한다. 고급양복을 입고, 안 입고가 자유롭다. 비싼 고급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만일 스님이 비싼 고급차를 타는 것은 인연에 안맞다. 그가 말하는 법문과 그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중생은 금방 알아차린다. 보살은 검소하다[자유롭다].
어디에선가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내가 무를 믿지만 난 항상 낙관주의자였다"라고요. 그 어떤 일도, 그 무엇도, 우리가 죽을 때는 그 무엇도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당신을 비닐봉지에 집어넣어 쓰레기 더미 위로 던지면 그뿐입니다. 이해하시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용서도, 신앙도, 종교고 아무 소용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는 거의 화난 것처럼 언성을 높인다.] 단언컨대,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위선일 뿐입니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종교적인 말들을 믿지 않습니다. 신앙이란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이고, 종교는 정치인에게만 유용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종교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하나의 방법이지요. T.S 엘리엇이나 폴 클로델같은 지성인들이 왜 신자였을까요? [침묵...
옛날에 어질고 현명한 왕이 있었다. 연일 국정에 몰두하던 왕이 모처럼 짬을 내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아침 일찍 떠났다가 저녁에 환궁할 요량이었는데, 사냥에 심취한 나머지 미처 해가 기우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날이 너무 어두워 궁궐까지 돌아갈 수가 없었다. 충직한 신하들은 애가 탔다. 왕이 말했다. 저기, 저 민가에서 하루 묵도록 하자. 신하들은 펄쩍 뛰며 두 팔을 내저었다. 어떻게 전하께서 누추한 여염집에 들 수가 있겠느냐며, 밤길을 재촉해서라도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왕이 말했다. 내가 저 집에 들어가면, 내가 백성이 되겠느냐 아니면 저 집이 궁궐이 되겠느냐. (문학동네 20호, 1999년 가을, )
집착을 어떻게 내려놓을까? 나는 정말 필요한가 자문한다. 명상을 할 때, 다리가 저리면 다리 저림을 참지 않고, 욕구를 지켜본다. 나는 다리를 피는 게 정말 필요한가 자문한다. 생활하면서,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사고 싶은 마음을 참지 않고, 욕구를 알아차린다. 나는 그 물건을 사는 게 정말 필요한가 자문한다. 만일 고급 시계를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갖고 싶은 마음을 참지 않고, 욕구를 알아차린다. 나는 고급 시계가 필요한가 자문한다. 나는 고급 시계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특별히 싫어하지도 않는다. 고급 시계로부터 자유롭다. 만일 고급 시계가 상할까바 내 마음이 집착한다면 나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고급 시계와 동일시하는 걸 그만둘 것이다. 나는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