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 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역랑에, (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는 궁극적 진리에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 움베르또 마뚜라나, p54 2. "道可道 非常道" - 도라고 하는 도는 이미 도가 아니다. "所謂佛法者 卽非佛法" - 이른바 불법이라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3. "道行之而成" - 도는 걸어가는 데서 이루어진다 4. 진정한 지혜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도록 하는, 즉 "특정..
캠브리지 선원에서 어느 날 한 제자가 숭산선사에게 물었다. "나는 참선을 하고 있을 때면 주위에서 들리는 소음 때문에 큰 방해를 받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선사가 말햇다. "이 방석이 무슨 색깔인가?" "파란색 입니다." "그것은 조용한가, 시끄러운가?" "조용합니다." "누가 그것을 조용하게 만드는가?" 그 제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선사가 말했다. "바로 그대가 만드는 것이다. 시끄러움도 조용함도 모두 그대의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대가 어떤 것이 시끄럽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시끄럽고 조용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조용한 것이다. 시끄러움은 시끄러움이 아니며 조용함은 조용함이 아니다. '진정한 조용함'은 조용함도 시끄러움도 아니다. 만일 그대가 맑은 마음으로 어떤 관념도 없이 밖의 자동차..
안다고 하는 것이 이미 모르는 것이다. - 名可名 非常名 편의상 기준을 세워 안다고 하나 기준이란게 본래 없으니 안다고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준이란게 본래 없으므로 기준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고 나라마다 개인마다 편의상 기준을 세웠으나 편의가 바뀌면 기준도 바뀐다. 그러므로 오직 모를 뿐이라면 기준에 집착하지 않으며 인연을 따라 기준을 받아들인다. '인연을 따라'라는 말은 원인과 조건이 만드는 찰나찰나가 항상하지 않으니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으로 다만 할 뿐이라면 이를 좋게 보는 사람도,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자기 인연속에서 그런 기준으로 보는 것임을 알고 있으니 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칭찬과 비난이 양행兩行[조삼모사의]이니 실상은 오직 모를 뿐. 단 ..
1. 갈릴레이는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한 선원이 칼을 떨어뜨린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 순간에도 배는 계속해서 같은 속도로 육지에서부터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때 칼은 어디에 떨어지게 될까? 배에 탄 선원들은 칼이 수직으로 곧장 갑판 위로 떨진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부두를 산책하다가 마침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칼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고 할 것이다. 칼이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수평 속도가 0이 아니라, 움직이는 배의 속도와 같은 상태니까 말이다. 누구의 대답이 맞을까? 어느 쪽이 더 맞다고 할 것도 없이 양쪽 모두가 옳다. 칼의 움직임은 하나였지만, 움직이는 배에서 보느냐, 아니며 정지해 있는 땅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들어 나스스로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벗어나는데는 변하는 것이다. 이전의 것을 잊어버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야 살 길이 열릴 것인데, 그동안 몸과 마음에 물들은 습성을 잊지못하고 붙잡고 있다. 새로운 인연이 도래했으니 그것에 맞쳐 변해야만 인생을 참되게 살 수 있다. 이것을 잘 알면서도 안되는 것은 아직도 붙잡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탁, 잊어라. ["하지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모든 것이 언젠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올 거라는 믿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삶의 순간들은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삶 전체로 보면 외따로 떨어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순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처럼 시작하라. 박지성은 2009년 한 재일 칼럼니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한국대표팀으로..
우리가 겪는 체험은 더 이상 의심받지 않으며, 더 이상 비실재적이거나 환각적인 것으로 폄하되지 않습니다. 이 체험들은 더 이상 하나의 문제도 아니며, 더 이상 정서적 갈등들을 낳지도 않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뿐입니다. 내가 지난밤에 예수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만일 내가 이러한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사람은 내가 환상을 겪었다고 내게 설명해 줄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죽었고 그래서 도저히 나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죠. 다른 사람은 내가 허영심이 엄청 강하다고 생각하고는 혹시 내가 선민처럼 보이고 싶어 했던 것('마침내 예수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어')이 아닌지 의심..
1.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실험에서 어떤 자동차가 정지 상태일 때와 등속 직선 운동 중일 때 차 안에서 자유 낙하시킨 물체는 각각 같은 지점에 떨어졌다. 이 말은 정지 상태에 있던 처음 기준계에 대해 등속으로 이동하는 또 다른 기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물체의 낙하 지점이 같아 보이다는 뜻이다. 이처럼 서로에 등속도로 이동하는 기준계들을 갈릴레이 기준계라고 한다. 갈릴레이 기준계는 역학에서 관념화된 틀이나 배경을 이룬다. 또 갈릴레이 기준계에서는 모든 기준계들이 자연법칙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통하는 면이 있다. 즉 모든 기준계들이 평등하므로, 갈릴레이 기준계에서 그 어떤 실험과 측정이 이루어져도 힘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갈릴레이가 주장한 상대성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