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편으로 모든 결정론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길 바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가 우리를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로 봄으로써 우리의 병을 치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의 신체적 성질과 행동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앎의 나무 141)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그것을 구조적으로 결정된 어떤 체계의 작업 결과로 다룬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제까지 세계와 생물에 대해 내놓은 분석은 모두 결정론적 개념들을 가지고 이루어졌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우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또 거기서 생명체가 자생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을 명확히 구분할 때가 되었다. (142)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name=https://blog.kakaocdn.net/dn/7lgdl/btqDOj8qRlL/ks4FpVtiURoMD6pzjYzt81/img.jpg)
'더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을'뿐이다. 적응은 필요조건의 문제이며 그것을 충족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최선'의 방식이란 생존이 아닌 다른 기준을 끌어들일 때만 말할 수 있다. 유기체의 다양성이 여실히 보여주듯이 생명체란 다양한 구조적 경로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한 가지 관계나 한 가지 가치의 최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효율을 비교하는 일은 관찰자가 하는 기술의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적응을 유지해가는 개체들 각각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없다. (앎의 나무 133)
진화란 자기생성과 적응이 보존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자연표류다. 물방울의 예처럼 유기체와 환경 사이에서 발견되는 다양성과 상보성이 산출되는 데에는 그것을 조종하는 어떤 외부의 힘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계통 안에서 일어나는 변이의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을 조종하는 어떤 힘도 가정할 필요가 없다. 나아가 진화란 생물의 특정 성질을 최적화하는 과정이 아니다. 진화란 오히려 방랑하는 한 예술가와 비슷하다. 그는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여기저기에서 실 한가닥, 깡통 한 개, 나무 한 토막을 주어 그것들의 구조와 주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그것들을 합친다. 그가 그렇게 합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떠돌아다니면서 서로 어울리게 연결해 놓은 부분이나 형태들로부터 온갖 복..
생물에게 독특한 점이란 1차 등급의 개체든 2차 등급의 개체든 자기생성을 줄곧 유지하는 가운데 구조적 결정과 구조접속이 실현된다는 사실, 그래서 생물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 자기생성과정을 전제한다는 사실에 있다. 나아가 메타세포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자기생성은 이 2차 등급의 자기생성체계의 자기생성을 전제한다. 때문에 생물의 모든 구조변천은 생물이 자기생성을 유지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 자기생성의 유지와 양립할 수 있는 구조변화를 유발하는 상호작용들은 모두 섭동작용일 것이다. 반면에 자기생성과 양립할 수 없는 상호작용들은 모두 파괴적 상호작용일 것이다. 생물이 자기생성을 유지한 채 겪는 구조변화는 매순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모든 생명의 맥박과도 같은 것이다. (앎..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name=https://blog.kakaocdn.net/dn/bbz4iO/btqDOj8osEe/6o8HLfZB0n8kXxmjHGVil1/img.jpg)
우리가 어떤 개체를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환경과 구분할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간단하다. 우리가 과학자라면 우리는 오직 구조적으로 결정된 개체들만 다룰 수 있다. 다시 말해 오직 체계의 변화 전체가 그것의 구조에 따라 (그 구조가 어떤 것이든) 결정되는 체계만 다룰 수 있으며, 이때 체계의 구조변화는 체계 자신의 역동성을 통해 생기거나 아니면 환경과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 유발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마치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된 개체인 것처럼 행동한다. 2. 마찬가지로 전봇대와 세게 부딪치는 일이 작은 자동차에게 파괴적 상호작용인 반면, 탱크에게는 그저 싱거운 섭동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
생물과 환경이 구조적으로 서로 어울리면서 상호작용할 때, 생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의 섭동작용이 아니다. 섭동작용을 통해 생물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생물의 구조다. 이런 상호작용은 결과를 결정하거나 '명령'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결과가 '유발'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아 생긴 변화는 섭동작용을 준 개체로부터 유발되지만, 섭동작용을 받은 체계의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은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환경에게 생물이란 섭동작용의 한 원천일 뿐 명령의 원천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상호작용에서 나타난다. 이 현상의 보편타당성을 깨닫지 못하면 쓸데없는 혼란이 자꾸 생길 것이다. (앎의 나무 113)
생식댠계 때마다 반드시 함께 나타나는 유사성과 차이, 조직의 보존과 구조변이가 바로 그것이다. 유사성이 있기에 역시적 계열 또는 계통이 끊어지지 않으며, 구조적 차이가 있기에 계통의 역사적 변이가 가능하다. 그런데 어째서 어떤 계통은 새로 생겨나 확고히 자리 잡는 반면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주위를 들러보면 물고기는 그토록 자연스럽게 물에 적응해 있고 말은 그토록 적절하게 평지에 적응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겼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생물과 환경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앎의 나무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