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마치 '사실'이나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어서 그것을 그냥 가져다 머리에 넣으면 되는 것처럼 인식현상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늘 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어떤 물체가 '저기 바깥에'있다는 경험은 인간의 구조에 의해 특수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런 뜻에서 인간의 구조는 기술(Beschreibung)활동을 통해서 생겨나는 '물체'의 가능조건이다. 2. 일체유심조의 이해 이러한 순환성, 행위와 경험의 뒤얽힘,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방식과 다른 한편으로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사이의 불가분한 관계, 이것들은 다시 말해 인식활동이 세계를 산출함을 뜻한다. 인식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우리의 문제이자 출발점이며 탐구의 길잡이이다. 이 모든 것을 다음의 경구..
성찰보다 행위를 지향하는 서양문화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인식한다고 하는 특별한 상황을 마주하기를 전통적으로 꺼려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것은 마치 "앎을 알면 안 된다"라는 금기가 있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실제로 가장 가까운 우리의 경험세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세상에 온갖 부끄러운 일들이 많짐나 이 무지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것에 속한다. 2. 우리가 인식이 기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를 꺼리는 한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분석도구를 분석하기 위해 그것을 다시 분석도구로 쓸 수밖에 없다면 이때 생기는 순환성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눈에게 눈 자체를 보라고 요구하는..
1. 여러 색깔의 물체들로 가득한 세계를 경험하는 일과 그런 물체들에서 온 빛의 파장 구성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것이다. 내가 오렌지를 집 안에서 뜰로 나가도 오렌지는 똑같은 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컨대 집 안의 형광등에서 나온 네온 빛은 주로 단파의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반면, 햇빛은 주로 장파의 붉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오랜지의 색이 우리에게 꽤 일정하게 보이는 일과 오렌지에서 반사된 빛의 성질은 단순하게 서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2. 우리가 어떻게 색깔을 보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자세히 늘어놓기 어렵다. 어쨌든 요점은 색체지각 현상을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가 바라보는 물체의 색이 그 물체를 떠나온 빛의 속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
1. [무지] 우리는 보통 확실한 세계, 논란의 여지없이 정확히 지각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계 안에서 사물이란 오로지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확실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방식이다. 2. 이 책 전체는 확실성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버릇을 떨쳐버리도록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오로지 독자들이 자신의 확신을 버릴 때에만 이 책에서 전달하려는 인식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독자 자신의 경험 속으로 힘차게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앞으로 인식현상과 그것에 바탕을 둔 행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알게 되겠듯이, 모든 ..
실제로 실재와 인식을 서로 독립한 것으로 보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많은 생각들은 낯설고 그저 '철학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제어학자 푀스터(Heinz von Foerster)가 1972년에 과학에 던진 요구는 의미심장하다. 그에 따르면 우주를 기술하는 일은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 곧 관찰자의 기술도 포함해야 한다. 이때 관찰자를 생물로서 기술하는 일은 생물학자의 몫이다. 관찰자가, 다시말해 '언어 안에 있는 생물'이 실재에 대한 모든 인식과 이해의 중심에 놓인다. 여기서 실재란 관찰자의 인식행위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관찰자가 가르는 구분들을 통해 비로소 관찰할 개체들이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렐라는 이 창조적 인지과정을 가리켜 '있게 하기(Ontierern)라 부른다. 여기설 실..
1. 맹점의 실험이 극적으로 보여주듯이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앎의 나무 26) [T. 우리는 우리가 본다는 것을 본다. 흔들리는 건 깃발이 아니라 마음이다.] 2. 이런 종류의 실험들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들은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구조와 뗄 수 없게 얽여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한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문제는 우리의 생물학적, 사회적 행위의 역사와 떼놓을 수 없음을 깨..
끝으로 우리는 우리 관점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의 핵심은 바로 앎을 잘못 아는데, [무지] 앎을 모른는데 있다.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앎이 아니라 앎의 앎이다. 폭탄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앎이 아니라, 우리가 폭탄으로 무엇을 하려하는냐가 그것을 쓰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깨달음을 무시하거나 못 보게 스스로 억누르면서, 우리의 일상행위에 대한 책임을 떠맡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모든 일상행위는 빠짐없이) 세계를 산출하고 굳히는 데 이바지 한다. 우리가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세계를 산출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 행위의 초월성을 보지 못하면, 우리가 부응하고자 하는 상(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