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의 행위들이 사랑에 의해 인도된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더불어 살 수 있을까요? 사태에 대해 철저하게 이야기하고,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며,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공통의 과제를 수행하는데 참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사람들은 사회적 영역의 특징들을 갖고 있는 협력의 영역에 존재해야 합니다. 좀 더 일반적인 말로 표현해 보자면, 우리는 여기에서 민주주의를 보는바 사랑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근본적인 특징들은 자신과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존의 기획과 형태 위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더불어 작업하는 인간들-시민들-을 포함합니다. 군주제나 독재에서 시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타자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선생닌은 이 부정의 테크놀로지에 알맞은 예를 찹을 수 있습니까? 1960년대 초반, 미국인들이 베트남에 연루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지에서 다음과 같은 표제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미국인 50명 피살! 빨갱이들 200명 몰살!" 여기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표제기사를 쓴 사람에게, 미국인들은 정당한 존재 가치를 가지며, "빨갱이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피살된 것이 아니라 그저 "몰살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다음을 함축합니다. '윤리적 참여는 우리 자신의 사회적 귀속 영역을 넘어 확장되지 않는다.' 이 표제기사에 비추어 본다면, 타자는 더 이상, 우리와 공통적인 것을 아무것도 갖지 않..
나에게 화두는 물음이면서 대답이었다. 가령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 아니라 마음이다." 과 . 어느 날 어찌된 인연인지 이 물음들에 매혹되어 살다가 어느 날 그 자체가 대답으로 매혹되는 이중 매혹의 체험. 2. 하지만 하나의 대답을 탐색하면서 나는 과학자로서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체험을 내 방침으로 사용하고 과학 이론들을 구상합니다. 당신이 내 작업에서 발견하는 것은 실제로는 철학적 물음들과 과학적 대답들의 혼합물입니다. 내가 볼 때 이것은 올바른 관찰인 것 같습니다. (함으로 305) 3. 당신의 말하고 있는 것을 경청하다 보니까 정말이지 내 작업에서 이러한 상이한 단계들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군요. 비록 이러한 발생적 순서가 결코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나는 차라리..
우리가 선생님의 작업 속에서 발견하는 철학과 과학의 특별한 혼합을 좀 더 자세하게 상술해 줄 수 있습니까? 선생님이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과학적 대답들을 내놓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철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의 토대들에 대해 성찰 한다는 것을 뜻한디는 게 내 주장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라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철학적 사상가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정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대답을 탐색하면서 나는 과학자로서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체험을 내 방침으로 사용하고 과학 이론들을 구상합니다. 당신이 내 작업에서 발견하는 것은 실제로는 철학적 물음들과 과학적 대답들의 혼합물입니다. 내가 볼 때 이것은 올바른 관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적합한 호칭..
1. 그것은 브레겐츠에서의 체험으로 거슬러 갑니다. 철학자들과 칼 포퍼의 신봉자들이 콘래드 로렌츠가 전개한 진화론적 인식론을 비판해 달라고 나를 초대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분명 매우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로렌츠 같은 그렇게 뛰어난 생물학자를 비판하는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강의에서 신경체계의 폐쇄성을 다루었고, 매우 일반적으로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인식론을 참조하면서 어떠한 인간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실재 문제가 모든 것을 압도했습니다. (함으로 304) 2.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누가 옳은지, 누가 종의 출현, 환경과 적응이라는 현상의 존재와 영향력 등에 ..
1977년 어느 날 나는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이유는 내가 다음과 같이 세 번의 강의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강의는 창세기와 원죄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나는 사과를 따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준 이브가 하나의 사례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의 계율에 맞선 그녀의 반란이 인간의 자기인식과 책임 있는 행위를 위한, 낙원 - 자기인식이 없는 세계 - 으로부터의 추방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씌어 있듯이 아담과 이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바람에 다른 존재로 바뀌어버렸고 다시는 처음의 무죄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타락'하기에 앞서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는 벌거벗은 몸을 통해 나타난다. 벌거벗고 돌아다..
1부 1. 내가 보고 있는 저 모든 것은 나의 분별이다. 2. 저 모든 것은 저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다. 3. 일어나고 있는 것은 체계의 변이 뿐이다. 들어오는 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없고, 태어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더러워지는 것도 없고 깨끗해지는 것도 없다. 4. 이를 마음대로 분별한다. 들어온다, 나간다. 태어난다, 죽는다. 더럽다, 깨끗하다. 5. 하여 들어온다하나 들어오지 않으며 나간다하나 나가지 않는다. 태어난다하나 태어나지 않으며 죽는다하나 죽지 않는다. 더럽다하나 더럽지 않으며 깨끗하다하나 깨끗하지 않다. 6. 들어온다하나 들어오지 않으며 나간다하나 나가지 않으며 태어난다하나 태어나지 않으며 죽었다하나 죽지 않으며 더럽다하나 더럽지 않으며 깨끗하다하나 깨끗하지 않..
나 역시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사물들에 대해, 그것들이 마치 관찰자와 독립적인 실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씁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관찰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관찰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하고 쓰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쓰기 그 자체의 과정 속에서 주어진 것으로 보통 생각하는) 어떤 것의 생산과정들에 대해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사고가 어쩌면 새로운 종류의 말하기와 쓰기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할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몯느 사고의 순환성을 위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강화하기를 원한다면, 선생님을 그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