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불변의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구분은 인연을 따라서 나타났다 인연을 따라 사라지는 상대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금강경 강의 199) T. 오직 차이 만이 존재한다. 우리의 인식은 차이를 토대로 하기에 상대적이다. 이것이 있으려면 저것과 구분되야하고 또 저것이 사라지면 이것도 사라진다. 사실 그 자체는 사실일 뿐이며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모든 말해지는 것은 관찰자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다. 관찰자의 분별을 떠난 분별은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다.
1. 산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이 두툽니다. 한 사람은 동산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 사람은 서산이라고 주장합니다. 동산이라고 하는 실체, 서산이라고 하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에 다투는 것입니다. 2. 하나의 산을 놓고 서쪽에 사는 사람은 동산이라 하고 동쪽에 사는 사람은 서산이라고 하지만 그 산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닙니다. 그때그때 처한 상황과 인연에 따라 동산이기도하고 서산이기도 합니다. 3. 그런데 거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이 산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다'는 상을 짓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동산이라고 하는 사람과 서산이라고 하는 사람 모두를 상대로 싸웁니다. 4. 그렇다고 이것은 이전보다 한 단계 높은 싸움일까요? 아닙니다. 상을 짓는 데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
인과의 미신. 이 세상에는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내가 그 원인을 모를 뿐인데, 모름을 모름으로 두지 않고 이 무지의 자리에, 신의 뜻이다. 전생 때문이다, 타고난 팔자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메워왔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의식에 있어서 스피노자가 지적한 대로 목적인이라는 환상으로 무지를 채운다. 이 인과의 미신은 현대사회에선 과학으로 옮겨 왔다. 원인을 모를 뿐인데 원인을 만들어 메우는 데서 잘못이 생겨난다. 모름을 모름으로 남겨둘 때 모름은 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류는 이 모름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너무나 많이 [지금도] 이용해 왔다. 2. 이 세상에는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의 뜻도 아니고, 전생의 죄 때문도 아니고, 우연히 일어난 일도 아니에..
흔히 전생에 복을 많이 지으면 부자가 되고 죄를 많이 지으면 가난을 면치 못한다고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타당한 인과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것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부를 지향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부와 가난은 다만 하나의 상태일 뿐입니다. 이런 식의 전생 업보설은 유사 이래 지배층의 논리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려면 왕은 백성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것, 지배자가 될 만한 비범함을 타고났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합리화해야 했습니다. 왕이 된 것은 전생에 선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고 노예로 사는 것은 전생에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식입니다. 신분과 계급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가 전생의 업보 때문이라는 생각을 확산시킴으로써 지배와 피지배 계급의 관계를 합리화시키고 심화..
기대하는 마음 없이 베풀면 금강석처럼 변하지 않는큰복이 옵니다. 이것이 상에 머무르지 않는 무주상보시의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빚을 갚을 때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감사 인사를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빚을 갚는 살마과 같은 자세가 바로 무주상보시의 마음입니다. 마치 빚 갚는 마음으로 '원래 당신 것이니 도로 가져가시오'하는 마음으로 베풀 때, 양보했다는 상을 버리고 양보할 때, 바로소 상대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합니다. 상을 버린 보시는 베풂을 받는 상대가 아니라 베풂을 행하는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물합니다. 내 기쁨을 위해 베풀고 있음을 자각하고, 내 베풂을 받아주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보시해야 합니다.(금강경 강의 80) 2.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 큰스님이 젊은 ..
이렇듯 걸식의 의미 역시 수행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가난한 이에게 밥을 빌어 그들을 높였고, 왕과 귀족에게 굽히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낮추었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자 보다 높고 가장 낮은 자보다 낮은 이가 되어 일체중생이 평등함을 보였습니다. (금강경 강의 36) 금강경 제1분에 나타난 부처님의 모습은 어떠합까? 부처님은 온갖 번뇌를 끊은 분이므로 인간과 천상의 모든 중생에게 마땅히 공양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누구에게 어떠한 보시를 받아도 누가 되지 않는 분이니 '응공'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금강경에 그려진 부처님의 행색은 마치 거치에 불과합니다.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채 발우 한 개 들고 이 집 저 집 밥을 동냥하는 부처님. 제자들과 함께 얻어 온 밥을 나눠 먹는 부처님, 식사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