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그렇습니까? 뭐가 유아론적입니까? 당신은 저와 마주앉아 있고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고 있으며 우리는 심지어 악수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결코 환상이 아니며 결코 가공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외적 실재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나와 악수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느낌들의 지속적인 상호연관을 통해서 당신은 하인츠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인츠 폰 푀르스터에 대해서 그리고 베른하르트 푀르크센에 대해서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실재라고 표현하는 어떤 연결고리를 발명해 냅니다. 유아론자들은 그들이 홀로 있음을, 그리고 완전히 고립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른 어떤 것도 없다고 주장합니..
1. 견해의 차이점과 대비되는 점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인과관계라는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군요. 로렌츠의 주장에는 (관찰자가 아니라)환경에 우위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인과관계로 보자면 환경은 경험의 원인이고 그 결과가 점진적 인식의 확장을 통해서 실제적인 세계와 같아지는 적응인 것이지요. 당신은 이런 작용관계를 뒤집고 있고요. 그래서 유기체의 경험이 우위를 점하고 관찰이 원인이며 표상의 총체인 세계의 성립은 그 결과인 것이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어쩌면 제가 썻던 아주 짧은 연극한토막이 설명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연극은 관객이 있는 극장에서 행해집니다. 갑자기 멋진 붉은 막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무대로의 시야가 열리지요. 사람들은 한 그루의 나무, 한 여인과 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이번 대답 초반에 당신은 사이버네틱스의 근본원리로 순환적 인과성을 기술하고 모든 인식의 순환성을 강조했으며 사이버네틱스의 사이버네틱스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수준의 자기연관적인 진술들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허용하는 새로운 논리학의 문제가 등장했습니다. 줄곧 문제가 되었던 것은 순환성이라는 아이디어와 그것의 결과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완벽하군요. 사이버네틱스와 순환성에 대한 우리의 대답에 대한 참 멋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론은 끝이 아니라 다시 하나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떤 궁극적인 결말로 나아가기 보다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될 겁니다. 시간은 항상 함축적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금언을 보세요. '만물은 유전한다.' 그리고..
객관성이란, 관찰하기가 주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체의 망상이다. 객관성에 호소하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인기가 있는 것이다. (함으로 56) 내가 객관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망상이고 망상에 집착하여 화를 내니 괴롭다. 내 생각에 옳은 거지, 사실은 사실일 뿐이다. 내 생각에 옳듯이 남들의 생각도 옳다는 것 그러므로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은 본래 없다. 화는 망상에 사로잡힌 광증,임을 명심하자. 다름의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동일성을 추구하고 소외를 낳는 것과 달리 다양성을 긍정하고 교제를 추구한다. '옳고 그름을 너머', 이것은 적어도 '중도, 그 순간의 구조적 정합성의 너머'를 의미하진 않는다.
욕구에 기초한 사랑은 자기 만족을 추구하고 그 결과는 생각지 않으므로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이성에 기초한 사랑은 자기 만족 뿐 아니라 그 결과도 긍정적인가를 생각해 책임지려한다. 이성에 기초한 사랑은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좋아하려한다. 그가 싫다고 하면 곁에 가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반면 욕구에 기초한 사랑은 상대가 싫다고 해도 자기 만족을 위해 다가간다. 욕구에 기초한 사랑은 상대를 시들게하고 이성에 기초한 사랑은 상대를 회복시키고 꽃피게 한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를 향한 황용식의 사랑) 이성에 기초한 사랑은 자리이타. 이성에 기초한 사랑이, 욕구에 기초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욕구를 의식하는 한에서 이성적 욕망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성적 욕망은 금욕과는 전혀 상..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예컨대 신발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예뻐보인다. 신발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신발 자체는 예쁜 것도 아니고 안 예쁜 것도 아니다. 단지 나에게 예뻐 보일 뿐이다. 해서 이 신발은 나에게 예뻐보이기는 하나 있는 그대로는 예쁜 것도 안 예쁜 것도 아니기에, 예쁨에 집착할 타당한 이유가 [신발에는] 없다. 따라서 그 신발을 갖지 못해 괴로울 바는 본래 없는 것이다. 예쁨이란 내가 지은[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내가 지은 인연이 만든], 환상이자 꿈같은 허상이니 눈 뜨면 없어지는 것. 눈을 떠라, 괴로움은 본래 없으니. 그러므로 예쁨, 그 환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또 집착하지 않지도 않는다. 그저 환상처럼 볼 뿐이다[여몽환포영 응작여시관]. 2. 우리 감각이 원래 그대로의 실재를 반영하..
괴롭다는 것은 자연의 필연적인 법칙에 어긋남을 나타낸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이루려하니 괴로움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혹 인간사에 있어 편법과 눈가림으로 꿈같은 일을 이룬다해도 거기엔 반드시 부작용인 과보가 따른다. 과보는 당사자가 죽은 뒤에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를 알아 어리석지 말아야한다. 괴로움 그것은 어리석어서, 무지해서 그런 것이지, 세상 탓할 바가 아니다. 두 눈 뜨고 꾸는 꿈, 괴로움. 1. 괴로울 일 없는, 문제 해결방법. "먼저 어떤 상황이나 문제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해결책이 있거나 어려움을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그 문제로 고통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행동은 해결책을 찾는 것 뿐입니다. 그 ..
2부 요청 5. 인간 신체의 유동적 부분이 다른 물렁한 부분에 자주 부딪치도록 외부의 물체의 의해 결정된다면, 유동적 부분은 물렁한 부분의 표면을 변화시키고, 그러한 움직임을 불러일으킨 외부의 물체의 어떤 흔적들을 물렁한 부분에 새긴다. 1. 구두 당신이 구두를 새로 한 켤레 사서 때때로 신기 시작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1년 후 당신의 발과 구두는 분명 변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그 이전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구두는 당신의 발과 전혀 뒤섞이지 않았음에도(구두와 발이 여전히 분리된 채로 그리고 폐쇄적인 존재들로서 존재하고 있음에도) 훨씬 더 편안해졌습니다.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경계들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고, 그것들은 어떤 식으로건 서로 침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구두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