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런데 만약 자기도 모르게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하고 시비 분별이 났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자책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그것마저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화가 났을 땐 화난 대로,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거기에 빠져들지도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파도가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듯이 내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야 된다, 이런 마음은 일어나면 안 된다, 그런 관념을 내려놓고 '지금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하고 지켜보면 마음의 움직임에 꺼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보같이 아직까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하고 자책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큰 괴로움 속으로 밀어 놓는 일입니다. 남을 시비하는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별을 일으켰던 자기를 탓하..
평면 위에 선을 그으면 그 선을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이 생겨나고, '이쪽으로 저쪽으로 넘어갔다'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만약 그 선이 없어진다면 넘어갔다는 말도 넘어왔다는 말도 함께 사라집니다. 분별의 경계선을 긋기 때문에 오고 감이 생기는 것이지 그 선을 거두면 자유롭게 움직이되 간다고 할 수도 없고 온다고 할 수도 없는 세상이 열립니다. 간 바도 없고 온 바도 없이 일체의 분별이 끊어진 경지가 그것입니다. (금강경 강의 455) T. 분별의 경계선으로 오고 감이 생겨난다. 그 선을 거두면 자유롭게 움직이되 간다고 할 수도 없고 온다고 할 수도 없는 세상이 열린다. 뒤집어 말하면, 분별로 세상이 출현한다. 어떤 분별을 하느냐가 곧 어떤 세상을 출현시키냐이다. 우리가 만..
1. 부처님은 깨끗함과 더러움을 분별하지 않으니 싫어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더러워서 싫다고 갖다 버릴 것도 없고 깨끗해서 좋다고 챙겨 넣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함이 없으며 수고할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도 '부처님도 분별을 하는군. 더럽고 깨끗함이 따로 없는 거라면 그냥 입으면 되지 빨래는 왜 한담'하고 생각할 겁니다. 이는 '더럽고 깨끗함에 분별이 없다면 더러운 옷을 그대로 입어야 한다'. '빨래란 더럽고 깨끗함을 분별해서 더러운 것을 버리고 깨끗한 것을 취하는 것이다'. '더럽고 깨끗함이 본래 없다면 빨래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러움과 깨끗함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를 좋..
1. 또 보살의 농사는 수확에만 매달리지 않습니다. 수확만 바라보는 사람은 수확에 이르는 과정이 참아내야 할 인고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보살은 농사짓는 그 과정이 모두 즐거움이므로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거둬들인 수확은 이미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남은 찌꺼기일 뿐입니다. 그러니 누가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나누어줍니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한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이 나의 삶입니다. 지금 여기를 떠난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등산의 즐거움은 정상에 도달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한 발 한 발 올라가다 힘들면 쉬면서 경치 구경도 하고 배고프면 먹기도 하는 게 산에 오르는 즐거움입니다. 정상에 서는 것만이 등산이라면 편하게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지 ..
그거 참 샘통이다. 불행을 즐기는 이유는 뭘까? 복수는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든다. 내 손으로.
머리털을 잘라야만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듯이 머리카락이라는 형상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집착의 어리석음을 지적해 도는 머리털에 있지 않으니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도가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제 머리털을 깎지 않아도 도를 얻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생각도, 깍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법이 아님을 일러줍니다. 머리털을 깎지 않아야 도를 얻는 거라면, 그때에도 도는 여전히 머리털에 있는 것입니다. 도는 머리털을 깎고 깎지 않고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깨친 사람은 머리카락을 깎을 인연이 되면 깎고, 깎지 않을 인연이 되면 깍지 않습니다. 머리카락을 깎아야 한다느니 깎지 말아야 한다느니하는 두 생각을 다 버려야 자유로워 집니다.(법..
모든 체계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의 외적 작용체는 체계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변화는 섭동하는 작용체에 의해 유발되지만 섭동 체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합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138) T. 가령 신발을 보고 예쁘다는 인식과 좋은 감정이 들었을 때, 신발은 좋은 감정을 유발할 뿐 결정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예쁘다는 대상에 예쁘다가 없기 때문이다. 신발은 신발일 뿐, 예쁘다는 감정은 내가 산출하는, 즉 '내가' 예쁘다고 보는 것이니. 신발은 나의 감정을 유발했을 뿐 감정을 결정하는 체계와 무관하다. 예쁘다는 대상에 예쁘다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