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 물리적 사건들과 더불어서 함께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이 주인이 되서 이곳저곳 간다고 이야기해서 마음이 주체적 실체처럼 생각하면 안된다. 마음이라고하는 것도 우리가 보는 모든 물질계와 어울려서 함께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작용하되 그 마음조차도 어떤 대상하고 만났을 때 작용되는 그 전체가 마음이 되기 때문에 이 마음이 있어서 이것을 보고 있고 이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이 대상으로 떨어져서 자기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아가 있다라고 생각하는데서 그 마음을 그렇게 보는데 그렇게 보는 마음자체가 완전히 허구로써 자기를 보고있다. 마음은 그런 식으로 구성되서 객관으로부터 떨어져서 그것을 보고 있는 주체로써 이것 하나가 왔다갔다하고 있는 마..
"꿈속에라든가 삼매속이라든가 해서 근데 이때도 있는 대상을 보는 게 아니고 그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종자와 현행하는 마음과의 상관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전생을 스스로 만들어서 그것이 현행의 마음작용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생이라고 읽고 있는게 대부분이다. 전생이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전생을 본다고 하는 많은 경우는 다 그와 같이 자기를 보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A라고 하는 사람이 100년전에 어디에 살았고 200년전에 어디에 살았고 300년 전에 어디에 산 것이 아니고 살아온 과정 중에서 우리의 현재 몸이라고 하는 것은 어제까지 내가 익혀온 의식정보도 가지고 있고 또 부모로 받은 의식정보도 가지고 있고 또 이 사회가 주는 공업적 의식정보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의식..
"우리는 흔히 대상이 있어서 그 대상이 나로 하여금 탐심이나 진심을 내게한다라고 말하는데 실재로 우리 삶이라고 하는 것은 대상이 나로 하여금 탐내게하거나 욕심내게 하는 게 아니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면 탐낼려고 성낼려고 이미 준비를 다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계가 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마음이라는 것을 화가에 비유하고 있다. 언듯보면 밖에 있는 어떤 것들이 우리 스스로에게 욕심도 내게 만들고 화도 내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다. 만약에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욕심내게 만든다고 하면 그것이 누구에게나 그것이 욕심나는 상황으로 다가와야 되..
생이 멸을 담고 있고 멸이 생을 담고 있으므로 생멸이 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예컨데 천으로 모자를 만든다면 모자가 생겨났지만 모자 이외 것으로 생겨날 여력, 가능성은 멸한 상태인데 정확히 표현하면 멸한 상태로 살아 있으며 다시 모자가 멸해 천으로 돌아간다면 천이 모자 이외의 것으로 생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없어지지 않고 그 모양을 바꿔 표현된다고 한다. 에너지가 뭉치면 어느 순간 물질이 되고 물질이 흩어지면 에너지로 있어 물질과 에너지가 등가다. 물질 에너지가 다해 쓸모없는 에너지라하더라도 인연 조건이 형성되면 쓸모있는 에너지로 됨으로 쓸모없는 에너지가 쓸모없는 에너지인 것은 그러한 조건을 만나기 때문이고 다른 인연의 장이 형성되면 그자체가 쓸모있는 에너지로 변하는 것이다. 쓸모..
자성이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자성이 없다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인연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갖추게 되면, 스스로의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길이 됩니다. 단지 기억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공의 제한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동일한 자아를 인식 대상으로 세워 놓고 속는 일도 없습니다. 번뇌의 자성도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번뇌가 자성이 없으니 해탈도 자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뇌로부터 해탈되었다고도 할 수 없는 해탈의 삶을 살게 됩니다. T1000.0 : 팔정도의 첫번째가 正見이라고 한다. 바른 견해, 바른 안목이 첫번째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허탈한 삶으로 느낀다면 방향이 틀리기 때문일터. 나아가 사회 역시 빠..
지혜가 성취되면 자성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의 허구를 체득하게 됩니다. 또한 지혜인 바른 판단도 단지 인연처에서 그렇게 판단될 뿐, 그 판단의 내용이 인연처의 바뀜과 상관 없이 언제 어디서나 진리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리가 인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성 없는 무상한 인연의 드러남이 진리입니다. 진리라는 자성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반야 공관에 의해 체득된 지헤입니다. 인연이 지혜로 드러난 것입니다. 자성도 없고 타성도 없는 것이 무자성의 인연이 되나, 인연의 비움이 무자성이고 공성이고 지혜일 뿐입니다. 모든 법은 인연의 어울림에서만 자신의 자신의 모습을 갖게 됨느로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그 모습에 머물기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昧]가 반야의 세..
이것과 저것이 먼저 있어 인연의 장이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의 장에서 이것과 저것이기 때문에, 인연의 장에서 이것과 저것을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연이 바뀌면 이것과 저것도 다른 이것과 저것이 됩니다. 더구나 인연의 장은 무자성이 특성이 때문에 이것과 저것이라고 할 것도 실제로는 없습니다. 끊임없는 변화의 인연만이 있습니다. 인연은 무엇의 원인이 아니라 그 자체가 그저 그렇게 흐를 뿐입니다. 인연의 장에서는 실제적인 자아가 없습니다. 만일 실재하느 자아가 있다면 인연이란 말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꿰뚫어 알아차려야 합니다. T1000.0 : 내가 있고 따로 너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인연의 장에서 그 모습 그대로 너와 나로 표현된 것이므로 이 표현이 본래면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