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립문자, 진리를 세우지 않는 대화. 점잖은 대화 *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려 하지 않는 사람, * 자신을 재판관이나 경찰과 같은 지위로 끌어 올리지 않고 * 다른 사람에게 각자의 여지를 부여하는 그런 점잖은 사람 1. 이런 간단한 놀이의 도움으로 그런 표현들이 갖는 독재적 힘에 대한 주의가 생겨났고 이런 방식으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지요. 그 다른 언어는 어떤 모습인가요? 여기서는 외적 준거를 포기한 다른 사람과 저와의 대화가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잠시나마 '세계에 대한 그런 관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당신이며 우리가 관련을 맺는 것은 밖에 있는 이러 저러한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러면 뭔가를 말하는 사람의 그때그때의 개성이 부각되는 겁니다. '이것은 이렇다'..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다는 건. 상대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내 평가를 내려놓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가 그런 감정이, 그런 생각이 떠올랐구나하고 있는 그대로 듣는다. 비록 상대의 반응이 내가 한 말의 의도와 맞지 않더라도 그렇게 일어난 것이니 그것을 옳르니 그르니 평가하지 않는다. 아니 평가가 되더라도 나에게 일어난 생각이니 이 역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평가의 말을 내놓지 않는다. 평가는 다음 문제다. 이미 일어난 것을 있는 그대로 듣는다. "당신이 그렇게 느꼈군요." 2. 이런 건 각자의 느낌을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알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아,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됩니..
색즉시공. 공은 색 자체의 본질적 특성. 색 자체가 공하다.색 자체의 본질적 특성인 공은 그 실체가 없다. 우리에게, 이 실체 없음인 공은 연기적으로 구성된 관계들인 색으로 산출된다. 공즉시색. 그러므로 색은 색, 공은 공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색에서 공을 보고, 공에서 색을 본다. 둘로 분리할 수 없으며 다만 둘을 구분할 뿐이다. 추상 생명체계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들이라는 가정은 '관찰자와 독립되어 있는' 실재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그것은 관찰자들이 체험할 수도 있는 정합성들로부터 귀결하는 하나의 추상물입니다. 추상한다는 것은 어떤 과정의 규칙성을 포착한다는 것이고, 연관된 현실적이 요소들에 주의하지 않고 그것을 정식화하는 것입니다. 체계의 구조적 결정론을 논의할 때마다 나는 존재적 또..
그러면 뭐가 밖에 있지요? 그런 생각을 계속 밀고 나가게 되면 우리는 지각과 느낌이 우리 자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고 외부세계에 색깔, 냄새, 통증, 따스함과 차가움이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보세요. 여기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것이 살아가고 있고,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색을 보고 따스함과 차가움을 경험하며, 꽃 혹은 매연 냄새를 맡으며 수많은 느낌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구성된 관계들입니다. 그것들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생겨납니다. 말하자면 음악을 듣는 일의 물리적 원인은 공기 중의 몇몇 분자들이 다소 느리게, 다른 분자들은 약간 빠르게 고막에 도달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이것..
1. 이때부터는 자신이 판단하고 경험하고 그렇게 하다 잘못되어 마음고생도 해보고 다치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그럴때 부모는 걱정이 되어도 지켜봐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진정한 사랑이에요. 염려된다고 어린아이를 돌보던 습관대로 계속 아이에게 간섭하면 부모는 부모대로 힘들고, 자식은 자식대로 경험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식이 성년이 되면 완전히 정을 끊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나 사람의 인격체로서 홀로서기가 가능해집니다. 지나치게 간섭해도 안되고 너무 무관심해도 안 됩니다. 애정을 갖고 지켜보다가 상대가 도움을 요청할 때 적절하게 도와주는 게 좋습니다. 2. 누군가가 답답해서 제게 "도움을 주십시오"하고 요청할 때 적당한 조언을 해주면 긍정적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1. 인간의 심성에는 이타심도 있고 이기심도 있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이타성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사람이 늘 이타적일 수는 없어요. 이타심은 저 무의식 아래에 있고, 이기심은 그보다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심이 더 쉽게, 더 자주 드러나는 거예요.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때부터는 이기심을 가진 상대에게 과연 내가 어느 정도까지 맞출 것인가, 하는 내 문제로 바뀝니다. 이기심을 버려야만 세상에 평화가 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이기적이듯이 상대도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갈등이 크게 줄어듭니다. (행복 154) 2. 남이 어떻다고 못마땅해하지 말고 고치려고도 하지 마세요. 자기가 자기를 바꾸려고 해도 잘 안 되는데, 남을 어떻게 바꾸겠어요. 다만 내가 보기에 못마땅..
1.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2. 베이컨 지성은 결코 예술을 만든 적이 없으며 그림을 만든 적도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아솅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림을 만듭니까? 베이컨 그것에 대해선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아솅보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단순히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림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겁니까? 가슴으로부터, 위장으로부터, 아니면 대장으로부터 나온단 말입니까? 베이컨 그게 어디서 오는지는 누가 알겠습니까? (화가의 잔인한 손 107) 2. 내가 제안하는 바는 선생님들이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 학생들의 머릿속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포기하고 자신도 아는 것..
아내가 식사를 차리고 힘들었다고 나에게 뭔가 감정의 보상을 요구할 때, 나는 내심 베풀면서도 베푼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무주상보시'를 기대한다[강요한다]. 이런 마음으로 아내에게 한마디 충고한다면 정말 말이 안되는 일임을 참회한다. ['상에서 상 아닌 것을 보라' 했는데, 아무리 훌륭한 '무주상 보시'라도 '상 아닌 것에서 상을 만들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2. 만약 윤리가 도덕 혹은 도덕주의로 바뀌면 이상적인(바람직한) 것에 다가가는 순간 복종시키려는 전략이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윤리에 있어서는 늘 '내가 해야 해!'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내 행동을 내가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묶여 있음이라는 이념을 윤리적 법칙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