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종류의 실험들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들은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구조와 뗄 수 없게 얽여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한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문제는 우리의 생물학적, 사회적 행위의 역사와 떼놓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뚜렷하고 당연해서 오히려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앎의 나무 30) 2. 우리의 생각이나 의견, 의지는 각자의 경험과 환경에 의해 형성됩니다. 어디서 태..
정보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생겨납니까? 정보는 신호를 가지고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납니다. 제 생각에 정보란 지각하는 의식 밖에 존재하는 사용대상이 아닙니다. 책, 신문,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교통표지판 등은 그러니까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잠재적인 정보의 운반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분입니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있는 기묘한 닭발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입니다. 이는 특정한 교통표지판을 보거나 붉은 신호등을 보더라도 우리가 운전면허증을 딴 사람이라야 우리에게 그 신호들이 브레이크를 밟고, 중립기어를 놓고 차를 세우게 만드는 정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때문에 괴로울까, 생각 때문에 괴로울까. '모르운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보다 생각 때문에 괴롭다. 사실이 어떻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괴롭지 않다. 은 말한다. "모든 것은 공하다. 성스러운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 사실은 이렇다, 성스러운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 생각으로 성스럽다 더럽다 할 뿐. 과거의 상처로 지금 괴로운가. 그 때, 그 일, 그 사실을 잊지 '못' 한다면. 그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알아야한다. 불구부정! 지난 밤 악몽에서 깨어나라. 2.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는 체계들에 대해 대단히 깊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의 모체를 알고 있고, 이 모체에 의해 덮이지 않는 틈들과 빈 공간들을 발견합니다. 이 틈들 속에서 그는 완전한 자유와 더할 ..
제 추측에는 가 무엇보다도 형식적으로 그리고 문체적으로 당신에게 인상 깊었던 것 같군요. 왜냐하면 당신도 짧은 문장과 유익한 경구들을 즐겨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당신이 그 책에 열광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군요. 왜냐하면 비트겐슈타인은 그 책에서 실재론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서 말이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고 있으니까요. 그에게 있어서 지각이란 구성이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아마 저의 짧고 간결한 표현들은 를 일찌기 읽는 것 그리고 그 속의 금언적 명제들에 빚진 듯합니다. 그러한 설명의 방법이 저엑 ㅔ인상적이었다는 점에서 당신의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 그 책에 열광할 어떤 내용적 이유도 없었고 없다는 당신의 주장에 저는 동의하지 않..
사실과 생각의 괴리. 예를 들어 실제 남편의 모습과 내가 그리는 남편의 모습 가운데 보통 우리는 후자에 의존해 산다. 이렇게 내가 그리는 생각이 기준이 되면 남편은 수준 미달이고 나쁜 사람이고 미워죽겠다. 만일 내 남편이 밉다면 사실과 생각의 갭 만큼 미울 것이다. 이 사실과 생각의 갭이 없이 일치하려면 남편이 내 기준에 도달하든지 아니면 남편을 사실 그대로 보는 것이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내 기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는 남편 역시 함께 보는 것을 포함한다. 내 기준은 기준대로 나두고 또 남편을 있는 그대로 나두고 보면 갭이 있어도 갭은 문제가 안된다. 왜냐면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남편에게 내가 그리는 남편 상을 말하고 그리 해주기를 부탁할 ..
1. 제 주장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물음을 결정할 때면 언제나 형이상학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명명하고 안하고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존재의 흐름 속에서 영원히 그렇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논리적 구조나 관찰할 수 없음 등으로 인해서) 분명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결정할 수 없는 물음을 계속 반복적으로 결정합니다. 누군가 과거에 대해서 얘기할 때조차도 그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서술에 표를 던집니다. 그는 사실이 어땠는지 모릅니다. 그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만 알뿐이지요. (발명품 255) 2. 사람들에게, 이 경우 그런 교과서를 쓴 저자들에게, 자기들 스스로가 있었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했다는 사실이, 항상 의식되..
1.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이나 자식, 그리고 친구는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코로 냄새 맡고, 내 손으로 만져보고 그걸 종합해서 내 머리로 상상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내 업식을 통과해서 그려진 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그린 상이 실제의 모습이라고 착각합니다. 자신의 업식에 의해 왜곡된 모습을 실제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답답하면 278) 2. 자기가 쓸데없는 걸 고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는 그게 옳으니까 옳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색깔 있는 안경을 끼고 있다는 걸 자신은 잘 모릅니다. 한 번이라도 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