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에 기초한 행복은 욕구가 자유롭게 해소될 때다. 돈이 많을수록, 권력이 높을수록 하고 싶은 대로 될 확률이 높다. 돈과 지위를 쫒다보니 돈과 지위에 매여있고 항상/이미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많은 선택 가능한 욕구를 누릴수록 자유롭다고 느끼나 욕구가 이뤄지느냐 안이뤄지느냐에 따라 행복하고 불행하여 고락의 윤회에 속박되어 있다. 행복, 불행, 힐링, 스트레스, 치유 등등, 모두 욕구에 기초해 영위하는 삶.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행복. 욕망하되 욕망되로 되지 않아도 괜찮은. 쾌락도 금욕도 아닌 중도는 욕구로부터 자유롭다. 욕구를 추구하는 쾌락이나 욕구를 절제하는 금욕은 모두 욕구에 기초해있는 조삼모사. 다르지만 같은 것이다. 중도는 욕구가 이뤄져도 괜찮고 욕구가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욕구의 사사무애법계..
1. [제3 사구게: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2. 공동체 수행 대중은 분과별로 ‘공동체’를 주제로 연찬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분과별로 열띤 토론을 펼친 후 오후 5시에 강당으로 모두 모였습니다. 스님이 자리하자 곧바로 전체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분과별 토론 결과를 공유했습니다. 스님은 토론 결과를 듣고 공동체 대중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생각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 수행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각 사례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토론을 ..
원하는 대로 욕구가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아. 원하는 대로 되도 좋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괴롭지 않아. 욕구로부터의 자유. 사사무애법계. "욕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괴롭지 왜 괜찮지?" 세상의 일이 다 욕구대로 다 이뤄지지 않으니까. 사실이지. 욕망하면, 노력하면 무조건 다 되야한다고 믿음은 미신이지. 욕구하고 욕망하라. 욕망을 긍정하고 그 욕구가 욕망이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그 결과를 긍정하는 긍정의 긍정. 긍정의 순환 가운데 살면. 예를 들어 성욕으로부터 자유는 성욕이 이뤄지지 않아 괴로워할 바가 아니라 [성욕을 추구하는 것이나 성욕을 참는 것은 모두 성욕에 매여 같은 것이라] 이뤄지지 않음으로 이루는 평안에 눈돌려 홀로 있으면 정진하기 좋았고 같이 있으면 즐길 수 있어 좋은. 욕구되로 ..
1. 블레이은베르흐의 예를 다시 취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편지19). 다시 말하면 신은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신은, 그 열매는, 그 구성 때문에 아담의 신체를 해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아담에게 인식시킨다. 열매는 비소처럼 작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출발점에서 스피노자의 핵심적인 논제를 발견하게 된다. 나쁜 것은 중독, 소화불량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논제가 그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개별적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배척이나 알레르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블레이은베르흐는 이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스피노자의 철학 p51) 2. 신이 아무 것도 금지하지 않는 이유. 세상에는 오직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차이에는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고 다만 다를 뿐이다. 옳고 그른 것이 아..
악몽을 꿀 때 우리는 꿈이 생시인 줄 알고 꿈속에서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이런 악몽이 두 번 세 번 자꾸 되풀이되면 나중에는 '이건 꿈이야.' 하고 꿈속에서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렇게 꿈속에서 이게 꿈인 줄 알아차리는 게 정진입니다. 몽중일여, 꿈속에서도 화두가 성성해야 합니다. 그렇듯이 괴로움이나 화, 짜증, 미움 등이 일어날 때, '이건 내가 지금 경계에 사로잡히는 거야,' 이렇게 자각하는 훈련, 깨어있는 훈련을 자꾸 해야 합니다. 이걸 개선하는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절한다고 개선되는 게 아닙니다. 항상 그때 그때 '아이고, 내가 또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깨어 있고, 또 놓치고 알아차리고, 또 놓치고 알아차리고... 이렇게 반복하다가 어는 순간 그 상황이 일어날 때 딱..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바로 자기가 자기 운명의 주인인 사람입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인 사람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삶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고 하는 일마다 넘어지더라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시작합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이 어린 마음이 어리석은 마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 곧 중생입니다.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집니다. '이건 내 탓이 아니야!'라고 변명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수행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괴로움은 다 내 마음이 짓는다는 전제에 털끝만큼이라도 예외를 둔다면 그것은 벌써 수행에서 어긋난 것입니다. (기도 118)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이다. 사실은 사실일 뿐이다. 또는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사실을 어떻게 보는가? 사실을 저마다 다르게 본다는 것. 사실은 사실일 뿐, 옳게 보거나 그르게 볼 수 없다. 다만 다를 뿐.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가? 여기서 옳고 그름보다 누가에 주목하자. 판단의 책임을 질 '누가'. 2. 그러면 가령 하나의 똑같은 대상을 기술하는 하나의 똑같은 진술만이 있는가 아니면 다만 그런 대상에 대한 다양한 표현법과 견해들과 관련이 되는가하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제 생각에 패러프레이즈(덧붙이는 말paraphrase, 해의) 조차도 같은 것을 기술하지 않습니다. 일리노이 대학에 근무했던 제 동료중의 한명이 거의 믿을 수 없는 실험을 했는데 그 실험은 어떻게 외관상 하나의 똑 같은 관찰이 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