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이루는 즐거움[락]과 반대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괴로운[고], 이 즐거움과 괴로움은 모두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어 매한가지다. 욕구에 기초한 즐거움과 괴로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번갈아 윤회한다. 욕구에 기초한 삶의 즐거움은 필히 괴로움을 동반한다. 반면 욕구를 이성의 지도에 따라 원으로 세우는 생산성, 능력에 기초한 즐거움은 괴로울 일이 없다. 이성의 지도란, 자연의 이치를 따라 인연과보를 새기는 것이다. 타당한 관념, 앎을 통해 능력에 따라, 원하는 데로 안되면 능력이 모자라므로 키우는데 애쓰는 바가 자연스러움이므로 이 필연적인 일에 괴로울 바가 없다. 욕구에 기초하되 이성의 지도에 따라 과도하지 않는 욕망은 큰 만족감 속에서 고락의 윤회를 벗어나 기쁨의 충만을 향한다.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를 땐 나에게 선도 악도 될 수 없다. 나아가 상대의 생각이 나와 반대될 때, 나의 본성에 일치하는 것과 반대되므로 나에게 나쁜 것, 악이다. 때문에 나의 보존을 위하여 상대의 생각과 미움없이 이별한다. 내가 메밀 알레르기가 있다면 메밀을 피하듯이.[나는 메밀을 미워하지 않는다.] 문화에 있어 문화가 다를 땐 나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 허나 문화가 본성과 반대될 때, 예컨대 반민주적인 것일 때는 나의 보존을 위해 피하거나 맞서야할 것이다. 의견 차이에 있어서도 의견이 다를 땐 아무 상관이 없다. 예컨대 상대가 짜장을 먹던 짬뽕을 먹던 나와 상관이 없다. 허나 상대가 짜장 먹기를 강요한다면 나의 본성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를 피하거나 싫다고할 것이다.
T.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집착은, [무지에서 비롯된 전도몽상이여서] 결국 꿈처럼 허무하게 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내가 지은 인연의 과정이 높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고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지은 인연의 과정이 낮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을 뜻할 뿐이여서 낮은 완전성의 이행은 재차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면 그뿐이다. 가을이면 낙옆이 떨어지듯이 모두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괴로울 일이 없다. 여기서 필요 이상의 마음을 써, 즉 욕심을 부려 집착하고 맹목적이 되고 부작용을 만들 행동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만일 괴롭다면 다시 이러한 프로세스를 점검해봐야한다. 괴로움이 [나의 돌아볼] 청신호다.
감정을 제어하고 억제함에 있어서의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감정에 종속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운명의 지배 아래에 있으며,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종종 강제될 정도로 운명의 힘 안에 있기 때문이다. ( 4부, 서론) 감정에 종속된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감정의 예속으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의 성찰이 아니고선 가능하지 않다. 강요나 힘에 의해 예속을 벗어나게 한다해도 다시 돌아가기 쉽상이다. 스스로의 성찰이 아니고선 타인의 힘을 빌려 제한하는 것은 그 때뿐이다. 하므로 나로서는 스스로의 성찰을 유도하는 사랑스런 시도와 나 스스로의 모범이 그에 대한 태도라 정립하며, 예속된 사람과의 약속을 기반으로 그 위반을 책망하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