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의 흐름은 잠시도 머묾 없는 무상 가운데 인연의 총상을 다 드러내기 때문에 기억된 대로 읽혀질 수 없습니다. 흐름을 이해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기억은 생명이 살아가는 데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였기에 대물림되었겠지만, 기억만으로 현재를 읽는 순간 현재의 무상과 어긋나므로 기억이 망념妄念이 됩니다. 무상한 연기를 새롭게 읽어내지 못하게 하는 기억들의 집합인 업식과 그 활동이 망심이 되는 까닭입니다. 기억은 언어로 된 분별을 집착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것과 상관없이 그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나 형상과 상응한다고 여기면서, 그 이미지와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망념의 기억은 실재라는 이미지를 갖는 기억입니다. 이러한 기억들의 모임이 스스로를 하나의 단일체로 여기면서, 알고 기..
정리 9. 정신은 뚜렷하고 명확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에 있어서나, 혼란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에 있어서나, 무한한 시간동안 자기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이러한 자기의 코나투스를 의식하고 있다. 증명: 정신의 본질은 타당한 관념과 타당하지 못한 관념으로 구성되어 있다(우리가 정리 3에서 밝힌 것과 같이). 따라서 (정리 7에 의해) 정신은 타당한 관념을 지니고 있는 한에 있어서나 타당하지 못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에 있어서나 자기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더욱이 정신은 무한한 시간 동안 (정리 8에 의해) 자기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정신은 (제2부 정리 23에 의해) 신체의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자기를 의식하므로, 정신은 (정리 ..
정말 일이 없는 것이 불안하지 않고, 내일의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행복을 나누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며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가 큰 이익을 얻는 사회이며 온전한 이익이 되어, 그 안에서 사람으로서 생명의 이익을 진실하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쉬는 것이 이익이 되는 사회가 마음 가운데 있는 나만의 한정을 고집하는 세계를 다 버릴 때 완성된다고 생각됩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바가 성취동기는 될 수 있지만, 비교로써 이익을 추구한다면 끝이 없겠지요. 끝없는 이익 추구는 아무도 쉴 수 없는 불안한 내일을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쉬고, 일을 하면서도 쉬는 마음이 될 수 있을까하고 연구하..
제자 :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선을 수행합니다. 나도 선 수행을 하고, 사업가도 법률가도 선 수행을 합니다. 나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삶에 대한 집착이 있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큰 사업'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몯느 사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선 수행만 하라고는 말하지 않으며,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상태의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선 수행만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까르마[業]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사 : 그대의 삶은 자연스러운 스타일[히피 스타일]이다. 그것도 좋다. 사업가 스타일의 삶 역시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대가 이러한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기 원한다거나 그대 자신을 위해서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그대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불교를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원을 지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좋은 것들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 경전에서는 말한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네모도 되고 동그라미도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 마음 속에 부처를 모시고 좋은 동반자가 되어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다르마(진리)의 큰 나무가 될 것이고, 큰그릇이 될 것이다. 이것을 나는 진정으로 바란다." "그대들 모두는 수도승이다. 수도승이란 무릇 개인적인 집착들로부터 해방되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을 말한다. 다르마의 큰 나무나 큰 그릇이 되려는 욕망을 갖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방해가 되어..
보살 수행을 근거로 한다면 열반涅槃이라는 개념도 상당히 달라지게 됩니다. 지계持戒와 선정禪定과 지헤智慧의 완성으로 열반을 성취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생명연대에 대한 자각이 현재 인식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할 때, 보살 수행자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이 갖고 있는 의意의 분별을 뛰어넘는 것은 일차적인 열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기법에 대한 철저한 학습과 실천 의지가 보상의 의意가 되기에 보살 수행자의 열반은 모든 생명들의 열반이라는 연대적 생명관이 의意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반의 완성을 생명계의 열반으로 확대하는 것이 보살의 열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이 의훈습으로 열반을 속히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생사를 떠나기 위해서 속히 열반을 성취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웃 생명들에 대한 방편지를 ..
화엄에서는 생명마다 생명 그 모습 그대로 '총상으로서의 우주 생명[總相]'과 '낱낱으로 나의 생명[別相]', 생명연대로서 '같음[同相]'과 나의 모습과 너의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생명활동으로의 '다름[異相]', 생성이라는 '긍정[成相]'과 소멸이라는 '부정[壞相]이 하나의 사건,사물 속에 오롯이 함께 있기에 그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삶을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분별된 '나'와 분별될 수 없는 생명연대인 '우주'가 어울려, 분별 속에 무분별을 담고 무분별에서 분별을 만드니, 나와 너의 '다름' 속에 '같음'이 있고 같음 속에 다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음과 다름이 함께 있으므로 다름들의 어울림이 가능하고, 어울림에서 느끼는 평안함과 사랑, 그리고 이웃 생명들에게서 받는 생명 나눔도 이루어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