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무렵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초라한 차림의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영철이 주문을 받기 위해 아이들 쪽으로 갔을 때 큰 아이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뭐 시킬까? " "자장면." 나두......" "아저씨, 자장면 두 개 주세요." 영철은 주방에 있는 아내 영선에게 음식을 주문한 후 난로 옆에 서 있었다. 그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근데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 아무것도 못 먹겠어." 일곱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누나, 그래도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누나는 지금 배 아파서 못먹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맛있게 먹어." 큰아..
당신은 자신의 작품이 전세계에 걸쳐서, 젊은 사람뿐 아니라 늙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굉장한 열광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니오. 정말로 모릅니다. 나는 확실히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내가 만일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면, 그건 단지 우연일 뿐입니다. 물론 나는 그래서 매우 행복합니다만, 그러나 나는 과연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인지 당신이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도 그것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나는 작업할때,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떤 예술가가 인정을 받을 것인지 아닌가를 알려면 당신은 매우 오랜 시간을, 어떤 경우엔 예술가가 죽은 뒤 오십 년, 혹은 백 년의 세월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예술가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 혹은 그..
내가 상대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준다는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꾸 그 대가를 바라게 되고, 바라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깁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생각에 좋아 보이는 걸 해주면서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 갈등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내 보기에 좋은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옷을 한 벌 사주었는데, 상대가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으면 당장 섭섭해집니다. "당신, 내가 사준 그 옷 왜 안 입어?" "뭐, 당신이 좋아하니까 산 거지 나는 별로더라." "아니, 기껏 사줬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이런 대화가 오가면 섭섭하고 밉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
가령 내가 '바라는 바가 없이 베푼다'는 무주상 보시에 크게 공감해 나자신 뿐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처럼 그러길 바라거나, 확신시키려하거나, 지시명령 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진다. 법을 주장하면[세우면] 법 아닌 것이 소외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고 말한 게 된다. 무주상보시를 하면 옳고, 안하면 틀린 게 되버린다. 옳고 그름은 없고 서로 다를 뿐이라고 나는 말하면서 서로 다른 너와 나를 나와 동일하게 만들려는 나는, 기막힌 자기 모순에 빠져버린다. 모순에 빠지면 의도와는 반대로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 된다. 옳다 그르다의 시비심을 일으키면 옳다는 그르다를 소외시키고 옳다로 동일화시키는 강제[지시명령]를 내포된다. '내 말대로 해!' 복종시키려한다(신사적으로 말하든 협박을 하든 모두 똑같은 경우다). 인..
1. 생각을 일으킬지라도 집착의 그림자를 달지 말아야 하고, 모양을 짓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그 모양이 영원하지 않음을 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형상은 한순간의 모습에 불과해 번갯불 같고 그림자와 같습니다. 모든 모양은 공하여 단지 허깨비일 뿐인 도리를 알 때 비로소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속의 시비 분별로 깨끗함과 더러움, 추함과 아름다움, 좋고 싫음, 옳고 그름, 신성한 천함,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지러운 차별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업식과 관념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금강경 강의 397) T. 눈에 보이는 모든 형상은 한순..
볼 때는 봄만이 있다. 욕망할 때는 욕망만이 있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다. 욕망하는 대상은 욕망의 원인이 아니다. 욕망의 대상을 소유한다해도 욕망의 결핍 원인이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므로 채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욕망은 오히려 생산이다. 때문에 욕망을 대상과 동일시하고 집착한다는 건 헛일이다. 대상을 아무리 소유한다해도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데 이유는 욕망은 결핍이 아니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흐름만이 있을 뿐이다. 욕망은 내가 산출하는 욕망이지 결핍은 없다. 욕망의 흐름은 늘어남도 없고 줄어듬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고 안도 없고 밖도 없다. 결핍은 불가능하다. 욕망은 얻을 것이 없다. 오직 변이의 흐름만이 무상하다. 욕망을 결핍으로 잘못 아는 무지는 욕망하는 대상이 독립..
1. 나는 동일시하지 않는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나는 나이고 싶다.] 나는 나의 감정 또는 나의 욕구를 대상들과 부당하게 동일시하는 일을 그만 둔다. 대상들에 대한 집착은 바보거나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오토바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 오토바이를 나의 욕구와 동일시하고 오토바이 소유에 집착한다면, 나는 이 부당한 동일시를 그만두고자 집착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자문해본다. 지금 나는 오토바이가 꼭 필요한가?] 비록 내가 오토바아를 소유하지 못해도, 즉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나는 괴롭지 않다. 왜 그런가? 집착[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집착하지 않나? 욕망의 대상에 욕망할 것이 없으니. 2. 나는 집착하지 않는다.[소요유] 나의 신체 변용의 관념이, 즉 마음이 무상함을 ..
1. 나는 그 어떤 대상과도 동일시하지 않겠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나는 일반인. 2.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나의 본능이 나를 이끌 것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안다. 본능은 내가 알고자 욕망할 때 내가 알도록 나를 이끈다. 우리는 본능을 알지 못한다.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이나 생각을 누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나. 허나 이 모름을 모름으로 나두자. 만일 기적 같은 일이라 믿겨진다면 기적을 자각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나는 내가 되고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나는 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