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객 지황은 처음에 오조를 참례한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이미 선정을 얻었도다"하고는 늘 암자에 있으면서 참선하기를 이십여년이나 되었다. 조사의 제자 현책이 사방을 다니다가 하삭이라는 곳에 이르러 지황의 이름을 듣고 암자에 들렸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현책: 스님은 여기서 무엇을 합니까? 지황: 입정합니다. 현책: 정에 든다하셨는데 마음이 있어서 듭니까. 마음이 없어서 듭니까? 만약 마음이 없이 정에 든다면 생명 없는 초목이나 흙, 바위등도 마땅히 정에 든 것이요. 만약 마음이 있어 정에 든다면 번뇌를 가진 뭇 중생들도 마땅히 정을 얻을 것이 아닙니까. 지황: 나는 정에 들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현책: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마음을 보지 않는다면 그..
현각: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신속한가 하옵니다. 혜능: 어찌하여 태어남이 없음을 체달해 얻지 못하며 빠르지 않음을 요달하지 않는가? 현각: 체달함에 곧 태어남이 없고 요달함에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 혜능: 그렇고 그렇도다. (혜능이 말을 마치니 현각이 바야흐로 위의를 갖추어 절하고 나서 잠간 있다가 하직 인사를 드렸다.) 혜능: 어찌 그리 빨리 가려하는가 현각: 본래 스스로 움직인 것도 아닌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혜능: 누가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현각: 스승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시는가 하옵니다. 혜능: 네가 이제 남이 없는 뜻을 얻었도다. 현각: 남이 없는데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혜능: 뜻이 없다면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현각: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니옵니다. 혜능: 착하도다. 하룻밤이라..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어떻게 의심하는가?" "일체 중생이 다 두가지 몸이 있사오니 육신과 법신이 그것입니다. 육신은 덧없는 것이어서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법신은 영원하여 태어남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것이어늘 경에 말씀하시기를 하셨으니 그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몸이 적멸하며 어떤 몸이 낙을 받는 것입니까. 만약 육신이라고 하면 육신이 죽을 때 네 가지 요소가 흩어져서 전혀 괴로울 뿐이니 괴로움을 낙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법신이라면 적멸하여 곧 초목이나 흙 바위와 같은 것인데 누가 낙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까? 또 법의 성품은 나고 죽는 본체요, 오온은 나고 죽는 작용입니다. 한 본체와 다섯 가지 작용이 나고 죽는 이것이 떳떳하여 나는 것은 본체로부터 작용을 일으킴이요,..
대원경지는 성품이 청정한 것, 평등성지는 마음에 병이 없는 것, 묘관찰지는 견해에 내세우지 않는 것, 성소작지는 둥근 거울과 같도다. 몸(5)과 마음(6)과 마나식(7), 아알라야식(8)의 결과와 원인을 굴린 것 이름과 말만 있을뿐 참성품 없네 구르는 곳에 정을 두지 않으면 아무리 번잡해도 큰 고요함이 되리. 5,6,7,8식이 뭔지 알지 못해도, 그 이름들을 뭐라해도 좋은데, 중요한 것은 마치 불확실성 원리의 전자의 움직임처럼, 그것들이 어떤 질서로 굴러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원인들의 질서[인연들의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모른다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니, [숭산스님의 가르침처럼] 나를 굴리는 참나는 이 모른다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또는 나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이 모른다가 굴리..
1. 대상에, 상에 집착하는 것은 상은 본래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인데 내 밖에 별도의 실체가 있다고 상을 모양짓고 집착하는 것인데, 하여 상이 본래 존재[대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존재가 집착할래야 집착할 것이 없는 공임을 알아 붙잡지 않을 것인데, 허공을 누가 붙잡으려 하겠나, 무상을. 2. 상이 본래 없으니 집착할 바가 없고 또 내 마음이 짓는 그 상은 따로 고집할 바가 없으니 시간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도록 인연을 따라 이룰 것인데. 3. 인연을 따라 욕망이 생기고 욕망의 부단한 과정이 인연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이 모든 변화의 역사[無常]가 바로 무상[無相], 상이 없기 때문이다. 상이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온갖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상에 집착하지 않을 순 있어도 상이 지어지는..
베풀고 받는 인과의 멍에속에 있는 자비는 온전한 것이 아니다. 베풀어도 베푼 바가 없고, 받아도 받음없어야 인과의 멍에가 끊어지니. 태양을 보라. 베풀어도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베푼 바 없는 저 태양. 받아도 [우리는 다만 감사할 뿐이다.] 받음없는 저 태양. 저 태양의 [글자그대로의] 무심(無心)을 품자. 태양처럼 감히 쳐다보지 못하는 더없는 공덕이 무심에 있고 지복은 [인과의 멍에속에서] 인과의 멍에에 메이지 않는 무심행 그자체에 있다. (무심행이야말로 마술[기적]이 아닌가.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으니 말이다.) 생멸 속에서 생멸이 없는 마술, 그 기적의 향유가 바로 지복(至福)인 것을.
선지식이여, 내게 무상송이 하나 있으니 각각 외워 가지도록 하라. 세속에 있는 사람이나 출가한 사람이나 모두 이대로 닦을 것이니 만약 스스로 닦지 않고 오직 나의 말만 기억한다면 아무 이득이 없을 것이다. 나의 게송을 잘 들으라. 말로 통하고 마음이 통함이여 해가 허공에 있음과 같으니 오직 견성하는 법을 전하여 삿된 가르침을 쳐부수리. 법에는 빠름과 늦음이 없지만 어리석고 깨달음이 빠르고 더딜 뿐. 다만 이 견성하는 문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못하여 만 가지로 셜명하지만 이치는 모두 하나로 돌아가네. 번뇌로 가득차 어두운 방에 항상 지혜의 빛을 밝히라. 삿됨이 오면 번뇌가 일고 올바름이 오면 사라지리니 삿됨과 올바름을 쓰지 않으면 청정하여 무여에 이르리. 깨달음의 성품 가운데 마음을 일으키면 곧 망녕.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