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된 나가 사라진 자리[止心]에 한없이 커진 생명들의 인연을 나로 삼는 실천 의지[觀心]가 지관지관을 함께 닦는 수행입니다. 분별심이 사라진 만큼 익어진 지수행이 '관수행'의 바탕이 되며, 자비의 실천인 관수행은 나의 분별을 넘어서게 하여 '지수행'을 돈독하게 합니다. '마음 비움[止]'과 마음 나눔[觀]'은 수행의 두 바퀴로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살라는 것이니 언제나 함께 익어가면서 수행을 완성시킵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일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삶의 본바탕이 지지인 '마음 비움'과 '마음 나눔'입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모습의 두가지 실천입니다. 그렇기에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갖추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깨달음의 길에 온전히 들어섰다고 ..
세상에 대한 집착도 마음이 만든 허상이며, 열반을 취하려고 하는 것 또한 마음이 만들어 낸 허물입니다. 생사를 떠나서 열반이 없고 열반을 떠난 생사도 없으니, 생사의 세상을 떠날 이유도 없고 열반을 희망으로 가질 까닭도 없습니다. 무상한 세상 그대로가 본래 열반의 정토이며 머묾 없는 무상이 부처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현존現存이니 머물 것도 없고 갈 곳도 없지요. 머물려 하거나 가려고 하는 것이 정토와 열반과 지혜를 가로막습니다. 마음을 바꾸어 지혜가 된다고 하지만 본래 바꿀 마음이 없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 바뀐 마음이며, 생사를 떠나 열반이 있다고 하지만 본래 생사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열반의 세계입니다. 중생을 바꿔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는 것을 아는 법계의 마음이 중생과 부..
생명의 조화로운 창조를 머물지 않는 생각으로 나타내는 무상의 실천은 이웃 생명과의 연대를 담아내는 데서 드러납니다. 어린이를 만나면 어린이가 되는 마음, 나무를 만나면 나무가 되는 마음, 습관에 막혀 있는 마음을 보면 소통으로 마음을 열어 함께 되는 마음, 혼자 있으면서도 그것이 우주가 되는 마음 등으로 하나의 마음이면서 온갖 다름으로 생각을 여는 실천이 지와 관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얼굴이 절대적 타자로서의 이웃이 아니라 그 얼굴 속에 나를 담나내는 이웃이 됩니다. '나'만의 무엇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 지수행이 익어가는 마음입니다. 무엇이든 그 자체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면서 다른 모습으로 모든 인연을 담고 있는 얼굴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분별된 무엇만으..
생각하지만 늘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겠지요. 습관을 거슬러 가는 습관을 익혀, 습관을 따르되 습관에 머물지 않는 알아차림이라야 '생각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예기치 않는 만남에서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그 사건을 주시하고 명료하게 이해하려는 마음의 흐름이 생각의 본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머물지 않는 마음[無住心]'이며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볼 수 있는 마음이지요. T1000.0 :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생각에 머물지 않는 생각. 내 생각이 있어야 틀린 줄도 알지만 내 생각대로만 생각한다면 틀린 줄도 알 수가 없다. 지止수행할 때 '오직 마음뿐이다.' '마음조..
아기가 태어날 때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다. 심지어 혼자서는 먹지도 못하는 채로. 아기는 믿음 하나로 태어난다. 세상에 나가면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나를 위한 모든 게 준비되 있을 거라는 믿음. 아기는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다. 아기의 믿음은 타당하다. 연기적 세상. 생명이 생명이게 하는 어울림이니. 아기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도 믿음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데 아무 지혜가 없지만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면 세상이 지혜를 드러낸다. 모든 것이 구족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무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볼 때마다 곳곳에 지혜가 번득일 것이다. 모두가 다 부처인 것을 믿는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는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처럼. [아기는 그것을 이미 아는 것일 수도]
83 지止 수행에 전념하는 좌선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지와 관을 함께 닦아야 한다. 곧 "모든 것[法]은 자성에서 보면 생겨남이 없으나[止]""인연화합으로 인하여 착한 일과 나쁜 일을 하게 되고 괴롭거나 즐거운 과보를 받게 되니 인因과 과果가 없어지지 않는다[觀]."라고 생각하며, "인연과 선악의 업에 대해서 생각할 지라도[觀]""그것들의 자성은 있을 수 없다[止]."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T1000.0 : 지관 수행은 자성이 없음을 멈추고 보는 것. 業도 공하고 空도 공하다.
그렇게 때문에 관觀을 수행할 때 모든 유의법有爲法, 곧 마음과 몸 그리고 모든 경계들이 꿈과 같고 구름과 같이 무상한 줄 살펴 알아야 합니다. 유위법에 집착하는 것은 쓸데없이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며, 집착은 인연의 흐름을 가로막아 몸과 마음을 오염시킬 뿐입니다. 하나도 즐거운 것이 없습니다. 무상을 보고 집착된 '나'가 없어진 자리에 자비심이 자란다고 하겠습니다. 무상한 인연 속에 살고 있으면서 받지 않아도 될 아픔을 겪고 있는 뭇 생명들에 대한 연민심으로 자비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힘닿는 데까지 뭇 생명의 아품을 껴안고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으로 잠과 망상과 게으름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뭇 생명의 아픔을 힘닿는 데까지 껴안겠다는 각오가 이익과 명예등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성찰의 완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