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셍보 얼마 전에 뉴욕에서 당신 작품의 거대한 회고전이 열렸지요. 왜 당신은 거기에 가지 않았나요? 베이컨 글쎄, 그건 당신이 그 당시에 그 행사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에 달려 있지요. 또한 당신 눈앞에 걸려 있는 당신 자신의 작품이 당신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안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러한 종류의 행사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다양하고, 그리고 때때로 나는 내가 해놓은 작업들이 다소 범속하며 그밖의 어떤 것들 보다 더 형편없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항상 내 전시회를 보러 가고 샆어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건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보기 위하여 당신은 어떤 감정 상태에 있어야만 하며, 당신이 처한 상태에 따라 당신의 지각도 변화하지..
1. 應無所住 而生其心 "뭇 보살과 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색에 머물어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또한 마땅히 성,향,미,촉,법에 머물어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 반드시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할 지어다. 색에 머물어 마음을 내지 말 지며, 또한 성,향,미,촉,법에 머물어 마음을 내지 말 지어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는 그 마음을 낼 지어다. 만약 그 마음에 머무는 바가 있다면, 그 머뭄이 머뭄이 되지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항상 보살이라면 그 마음이 색에 머뭄이 없이 보시해야 한다고 설했던 것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땅히 머무는 바가 없이, 즉 집착함..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12연기는 과거/현재/미래의 윤회로 반복된다. 반복이 이뤄지는 원리는 원인인 동시에 결과가 되고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 되다보니 또는 원인을 결과로 보고 결과를 원인으로 보다보니 반복은 무한하다. 12연기중 현재에 해당하는 것은 식부터 유까지로 8연기라고도 한다. 8연기 중에 애는 욕구에 해당하는데 하고싶거나 하기싫거나하는 감정이 발생한다. 욕구의 출현은 욕구에 사로잡히는 집착, 취로 연결되고 욕구를 취해 행위를 일으키면 그에 대한 결과로 열매이자 씨앗이 생기는데 이것이 유다. 유는 애를 취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물인데 이 결과(열매)가 다시 원인이되어, 씨앗이되어 생노사로 이어진다. 이때 생노사는 현재로 부터 이어지는 미래에 해당하며 이는 미래의 반복을 예정..
마뚜라나 나는 허영, 피상성, 질투, 확실성의 유혹들이, 당신이 더 잘 알려지고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될 때 직접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아부하는 속성들의 목록을 믿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지도 모릅니다. 특별한 누군가로 간주되는 것은 사로잡힘의 한 형태입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뭐라뭐라 하는 속성들을 자신의 뛰어난 자질들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내가 볼 때 맹목적으로 보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보는 모든 것-그것은 결코 내 자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내 자신의 인성이 아닙니다.
마뚜라나 옳지 않습니다. 생물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생물학자로서, 그리하여 과학자로서, 나는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오해일 것입니다. 사실상, 어떤 것도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사물들은 그저 사물들일 뿐입니다. 좋다 또는 나쁘다와 같은 평가들과 구분들이 발생하는 것은, 오로지 특정한 정도의 - 예컨대 우리의 특별한 선호가 걸려 있는 경우의-행위를 정당화하고 거부하는 바로 이 인간 영역에서일 뿐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나는 어떠한 추천도 하지 않지만, 예컨대 게놈을 조작하면 괴물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물학자로서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게놈 조작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마뚜라나 맞습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이라는 잘못된 개념은 다음과 같은 대안적인 생각에 의해 바로잡혀야 합니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것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외적 작용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논평하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속해 있는 섭동들(perturpations)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관찰자는, 그가 보기에, 체계에 충격을 가하고 그 안에서 (구조의 파괴에는 이르지 않고 그것의 조직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구조적 변화들을 유발하는 어떤 실체(entity)를 지각합니다. 이 마주침의 형태를 나는 섭동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 체계가 자신의 정체성[동일성]을 잃고 붕괴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파괴적인 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은 선생님의 고찰들에서 윤리적 규범을 이끌어 내기를 제안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을 창조하거나 보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라.' 마뚜라나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범의 정식화는 윤리를 도덕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나는 우리 대화의 이 지점에서 , 우리가 윤리와 도덕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비록 이러한 구분이 언뜻 보기에 다소간 자의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해도 말입니다. 도덕론자들은 규칙들의 고수를 지지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진술들과 이상한 생각들에 권위에 부여해 주는 외적 준거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책임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합니다. 도덕론자로서 행동하는 사람들은 동시대 인..
푀르크젠 선생님은 예전에, 모든 질병의 99퍼센트가 사랑의 결핍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달아 선생님이 틀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직 97퍼센트만이 그럴 수 있겠지만 틀림없이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사랑의 결핍과 질병 사이에 어떤 연결관계가 있다고 보는지요? 마뚜라나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은 신뢰입니다. 나비가 자신의 번데기를 벗고 나왔을 때, 나비의 날개와 더듬이, 몸통과 전체 몸의 상태는, 공기와 기운을 북돋워주는 바람, 그리고 꿀을 빨 수 있는 꽃들이 있을 것이라고 신뢰합니다. 나비와 세계 사이의 구조적 상응은 암묵적인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나의 씨앗이 젖어들어 싹을 틔우기 시작할 때, 씨앗은 모든 필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