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계持界는 어떻게 닦는 것인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험한 말을 하지 않고, 잡스런 말을 하지 않고, 꾸미는 말을 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속이지 않고, 왜곡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잘못된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T1000.0 : 말을 할 때는 법을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계율이란 수행자가 지켜야 할 생활의 덕목이면서, 그와 같이 사는 모습이 깨달음을 완성한 부처님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위한 노력은 부처를 이루지 못하고서도 부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인연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계율에는 좋은 일을 하라는 것도 있고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나쁜 일을 하지..
75 보시布施란 어떻게 닦는 것인가? 구하는 자를 볼 때마다 가지고 있는 재물을 자기의 능력에 따라 베푸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는 인색함과 탐욕을 버리는 것이고 구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생긴다. 어렵고 두렵거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대로 베풀어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있거든 자신이 아는대로 방편을 가지고 설명해야한다. 이와 같이 보시바라밀을 닦되 이름과 이익과 공경을 바라서는 안되고, 오직 스스로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회향해야 한다.
뚜렷한 분별 속에 모든 비교가 끊긴 미묘한 자리에서 모든 이웃 생명을 담아내는 '나'가 됩니다. 나와 나의 것의 허망함만을 본다면 허무한 삶이겠지만 그곳에 모든 시공간으로 확대된 '너'가 담겨 있는 것이 '나'가 되기 때문에 크나큰 이익이 됩니다. 그렇기에 연기법에 대한 이해 곧 해오解悟는 깨달음에 대한 이해이면서, 이해를 넘어선 이익利益을 줍니다. T1000.0 : 나와 나의 것이 없음만을 본다면 空에 집착하는 것으로 허무한 삶이 되나 내가 없기에 모두가 될 수 있는 확대된 나를 깨닫는 것은, 하나를 버리고 전체를 얻는 상식적인 이해를 넘어선 이익, 비교할 수 없는 이익이다.
진여란 공성에서 보면 자성을 갖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에 모든 현상을 공덕으로 갖게 됩니다. 하나의 모습을 갖지 않기 때문에 자아가 있을 수 없지만, 자아가 없기에 인연마다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인연의 시공을 창조하는 마음으로 사는 그 마음이 인연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매임 없는 기억과 주시가 진여법을 드러내는 마음이 됩니다. 진여법을 즐겁게 생각하는 마음이 바로 진여법이 될 때가 근본을 믿는 마음입니다. T1000.0 : 1. 오직 앎뿐이다. 주체와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앎이라는 '함'이 있기에 주체와 대상이 분별된 것이고, 모든 대상은 그자체로는 空하므로 대상이란 주체가 만든 대상을 아는 것으로 주체가 대상인 하나이며 하나이기에 앎이 가능하다. 따라서 오직 앎 뿐이다. 2. 오직 ..
닦아야 할 네 가지 신심 가운데 첫 번째가 '근본根本'을 믿는 마음'입니다. 근본이 되는 마음이 현상 너머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네 삶이 가능한 것은 마음 스스로가 시공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마음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언제나 현재일 것 같지만 현재조차 바르게 알기 어려워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이곳과 저곳의 관계가 성립되어 이곳과 저곳이 동시에 기억되어야 움직임이 있고 그곳에서 공간에 대한 인식이 성립이 될 것입니다. 이곳만이 보이고 기억되거나 저곳만이 보인다고 하면 관계의 장이 잡히지 않을 것이니 공간이 성립될 수 없겠지요. 무상한 인연은 변화만 있는 것이지만, 인식..
결정되지 않는 마음 씀이 자유로운 발상과 머묾 없는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정해지지 않는 마음이 깨어 있는 마음이 될 것입니다. 정해지지 않는 마음으로 사물과 사건을 보아야 사물,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뜻에서는 결정된 마음이지만 내용에서는 결정되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과 홀로 선 이해입니다. 이 마음은 삶을 관통하면서 관계하는 이웃들과 함께 소통합니다. '정해지지 않는 마음'만으로 보면 방황하는 마음이 되기도 하겠지만,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정해지지 않는 마음'을 지지한다면 정해지지 않는 그것으로 정해진 마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해지지 않는 마음을 인연 따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습니다. T1000.0 : 정해지지 않는 마음은 오..
연기법緣起法을 실현하고 있는 자연을 법신法身이라고합니다. 법신이 없는 곳이 없는 이유입니다. 인연마다가 자신의 의도가 되므로 자연이라고 합니다. 법신인 자연의 언어를 읽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의도만으로 세상을 보려 하는 데 있지요. 그 또한 인연인 것은 확실하지만 하나의 형상이나 언어표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디에도 '머루지 않는 인연[無住]'을 등지는 것입니다. 중생의 업業이 자연의 업이 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T1000.0 : 스피노자의 철학의 요체는 범신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저작 을 살펴보면 일체 모든 것은 실체와 실체의 변용인 양태이다라고 한다. 실체는 스피노자의 용어로 신이고 모든 것이 실체와 양태이므로 모든 것 즉 자연 모두가 신이 되는 이른바 범신론이다.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법신..
인연을 무상[無常,無相]이며, 공空이며 무자성無自性이라고 하지만, 이조차도 이미지[相] 속에서 그려지는 무상無相 등일 것입니다. 무상 등을 아는 것이란 무상한 인연을 읽는 마음만을 아는 것이지요. 생각하여 이해된 결과이며, 생각이 현재르 그렇게 만든다고 해야겠지요. 무상無相 무념無念이라는 이미지를 그리면서 실제로 이미지를 떠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생각이 현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의 인연일 뿐입니다. 인연은 '없음'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있음'으로 나타낼 수 도 없습니다. 있는 듯한 때는 있는 것이 인연이며 없는 듯한 때는 없는 것이 인연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활동[自然業]'입니다. 깨달은 분은 깨달은 분으로 있으면서 자연自然이 됩니다. 인연을 자연스럽게 따르면서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