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과 객관이 연기라는 장에서 앎으로 관계맺음이며, 앎에 의해서 관계가 조직되는 것입니다. 앎의 관계가 저절로 인연의 모습을 나투면서 흘러가는 것이지요. 이 흐름에 깨어 있지 못할 때, 곧 무명이 작용할 때 앎의 장은 감각기관과 생각에 의해서 조작되고 제 특성에 맞게 아와 법을 규정하고 분별하는 법화의 조직화가 일어나며, 이 법화가 다음에 일어나는 앎의 장을 왜곡시키면서 분별의 흐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이 법화되어 선악시비 속에 산다고 할지라도, 실제로는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된 장 속에서만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아법분별로써 잘못 알고 있지만, 우리의 삶 자체는 저절로 아는 연기의 흐름에 바탕을 둔 유식성이라는 것이지요. (40)
그러나 책상이라는 고정된 말은 보는 행위를 책상의 개념에 한정시킵니다. 곧 '방석에는 방석일 수 있는 절대적인 근거가 있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을 통한 독단적인 사고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근거는 명언종자, 곧 현실을 언어에 맞게 조작하는 분별력으로 닫힌 마음에 의해 굳어진 고정화의 세계이며, 고정화된 사고는 필연적으로 소외를 동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언어는 그 사물의 실체를 떠나서 언어자체가 절대화된 것입니다. (정화스님, 생활 속의 유식 30송 p37)
우리의 삶, 곧 연기실상의 흐름이자 무상한 변화는 삶을 지켜 보는 수행으로 거짓된 아와 법을 나누는 고정된 틀로부터 벗어나 있는 자유로운 앎의 흐름입니다. 이때 A라는 견해가 B라는 견해로 바뀌었다고 해서 삶이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견해의 B화일 뿐입니다. '변화가 생명인 것'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즉 A에서 B로의 변화를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앎은 기준틀을 갖기는 하지만 이 기준틀조차 만남의 조건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잊게 되는 순간 새로운 견해에 집착하게 되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의 변화란 단순한 견해의 바뀜이 아니라 삶이 매순간 그 자체로 전체적인 앎으로 항상 깨어 있는 바른 앎이 될 때입니다. (34)
우리의 삶은 연기실상인 총체적인 앎[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된 場]의 의해 유지되면서 흘러갑니다. 제8식의 식장은 '삶의 바탕인 동시에 삶을 유지하는 힘'으로서 만남의 관계 속에서 매순간 변하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 내어 '나는 나, 너는 너'로 고정화시킵니다. 순간순간의 흐름에 명철히 깨어 있지 못한 무명, 곧 근원적인 무명에 의한 것입니다. 이 분별이 중생의 삶을 이루고 있으며 , 이는 언어분별로 표출된 행위입니다. 또한 언어로 나타나기 이전의 분별력을 명언종자라고 하는데, 중생의 삶은 명언종자와 이의 현행으로 인한 본질적인 삶의 왜곡이며, 이 힘은 순간순간 법화를 이어가면서 삶을 분별하고 있습니다. 매순간 변하며 흐르는 우리의 삶에서 흐름의 동..
한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지금 여기서의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며, 지켜보는 힘이 커지면 생각에 따라가지 않고 생각의 흐름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욕을 들으면 기분 나쁜 감정이 일어납니다. 욕이라고 하는 개념[고정화]과 그 욕을 통해서 기분 나빠지는 감정[갈등]으로 동요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수행을 계속하면 욕을 듣고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되니, 순간적으로 욕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를 알아차리게 되고 이 힘에 의해서 곧바로 고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삶을 여실히 지켜보는 힘이 생기면서 분별하는 힘이 약해지면 고요한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이 힘이 켜져 무아를 여실히 알게 되면 보살의 분청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모든 번외의 종자까지도 청정하게 되어 언제 어느..
이들 가르침은 부처님의 말씀을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적의적절하게 운용한 것입니다. 유식의 근본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 곧 '관계 속의 삶'을 '앎의 관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 '관계 속의 변화'가 앎으로 나타난 것이며, 나아가 '앎이 곧 삶'이라고 보는 것이 유식의 가르침입니다. 앎은 삶의 진솔한 모습이며 연기이며 열린 세계라는 것입니다.(26)그래서 진실한 삶을 이야기하고 고정된 틀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인 유가 수행자들의 가르침이 남겨지게 되었는데, 세친보살의 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친 보살은 함께할 수 밖에 없는 중생에게 삶의 진실을 말함으로써 중생을 이롭고, 자유롭고 , 평화로운 삶으로 이끌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가 수행자들은 선정과 현실 체험을 통해서 삶의 ..
1. 우리의 삶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인, 앞에서 말한 여섯 세계를 놓치지 않고 잘 관찰하면,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고정된 틀을 알게 되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속에 열린 세계가 항상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법화는 늘 '만남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이 또한 앎의 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앎이 있는 곳에는 항상 '닫힘과 열림이 더불어' 있습니다. 닫힘, 즉 중생이 있는 곳에 열림, 즉 부처님의 세계가 있습니다. 고정화된 언어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서, 만남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흐름[연기]을 여실히 보아야겠습니다.(27) 2. p47 마뚜라나 처음에는 분리를 체험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결국엔 연결됨의 통찰로 바뀝니다. 물론 나는 내가 서술하고 있는 대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여기 탁자 위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