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조건을 맞추어 나를 바꾸는 길이 있는가 하면, 나는 그대로 두고 내게 맞는 조건을 선택하는 길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 길 가운데 어느 것이 좋고 나쁜가를 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어진 조건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를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고, 주변 조건은 바꿀 수 있지만 내 성향은 바꾸기가 어려운 형편이라면 일단 나에게 맞는 상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당한 길을 선택하면 됩니다. 연을 따라 인을 바꾸거나 인을 따라 연을 바꾸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근원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경계에 처하더라도 과보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인을 소멸시키면 됩니다. 인과 연이 결합하지 않으면 과는 일..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다가 힘든 고비를 만나면 '내가 어쩌다 이런 일을 겪게 됐을까'하고 한탄합니다. 이런 생각의 밑바탁에는 내가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억울함과 원망이 깔려 있습니다. 인연과를 믿는다면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식으로든 나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그 일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내가 그 일의 원인을 모를 뿐입니다. 모든 일은 신의 뜻도 아니고 전생 때문도 아니고 우연히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처한 상황이나 사건이 나와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공부의 시작입니다. T1000.0 : '원인을 모를 뿐'과 관련해 그 이유와 원리를..
우리 삶은 대부분 무언가를 이루려는 의지와 행동에 의해 움직이고 전개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하려는 마음 없이 하고 되는 바 없이 되는 도리를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교화했지만 정작 이 법을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집착한 바 없이 널리 설하여 중생을 제도합니다.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지요. 그래서 설법 전에 법을 청하는 청법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물어야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들으려 하지 않으니 실컷 털어놓지 못해서 아쉬워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 뜻과 내 마음과 내 주장과 내 처지를 이해받으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말이 끝도 없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세상 누구에게도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찾아와 자기..
이 모습이 조건 그대로 성추행을 당했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려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방안에만 웅크리고 있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성추행으로 자기 몸에 더러워졌다고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남자가 만지면 몸이 더러워진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어떻게 만지면 몸이 더러워집니까? 팔을 만지는 건 그래도 괜찮고 가슴을 만지면 더러워집니까? 얼마나 오래 만지면 더러워집니까? 5초쯤은 상관없지만 그 이상 만지면 더러워집니까? 남자가 내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일어난 순간은, 내가 내 몸이 더럽혀졌다는 한 생각을 일으켰다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더러워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더러워졌다는 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 오랜 시간을 꿈속에서 살았구나!' 그렇게 탁 깨달으면 이제까지 지고 있던 무거운 ..
물론 상을 여읜다는 것이 쉬운 일은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도 순간순간 온갖 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부드러운 이불 속에 누워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사실 아무 괴로울 일이 없는데도 저 혼자 생각에 사로잡혀 과로워하는 것입니다. 바람 불고 비 오고 햇빛 비쳤다가 눈이 오고, 그렇게 여러 모습으로 흘러가는 게 세상입니다. 본래 그런 세상의 움직임을 가지고 시비하고 온갖 상을 짓고 거기에 빠져 죽네 사네 아우성을 치는 게 중생입니다. 그런 이치를 안다면, 모든 괴로움이 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안다면, 정말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손에 꽉 움켜쥐고 있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이것이 방하착放下着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상황은 이미 일어났다'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명제입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한 상황이 지금의 내 현실입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한들 모두 번뇌에 불과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맞지 않아'하고 고집하는 마음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세상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와도 맞추어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내 의지대로 상황을 바꿔 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바꿔 살고자 하면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작은 나무막대기가 필요한데 큰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칼로 잘라내 작은 나무막대기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여건을 바꾸려면 노력과 수고를 당연히 여기고 기쁘게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을 확연히 안다면 내 삶을 내가..
부처님의 설법은 집착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최선의 방편입니다. 넘어져서 괴로워하는 이는 일어나게 해주고, 오래 서 있느라 힘든 사람은 눕게 해줍니다.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많이 먹게 하고, 과식하는 자에게는 조금씩 먹으라고 일러줍니다. 법은 인연 따라 설해지므로 그 하나하나가 다 진실합니다. 중생의 미망은 제각기 다른 상황과 조건 속에서 일어나므로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제각기 다른 그 원인을 해결해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 인연법을 무시하고 문자와 형상에만 집착한다면 부처님 법은 이미 거기에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고 다만 그 순간에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과 미혹을 부서뜨려 줄 뿐입니다. 물은 본래의 자기 모양이 없습니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
사법계의 중생은 배를 타고 바다로 놀러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서 물에 빠진 사람입니다. 재미있게 놀아보려다가 재미는 커녕 죽게 생겼으니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놀러 나왔던 걸 후회합니다. 행복해지려고 학교를 다니고, 행복해지려고 친구를 사귀고, 행복해지려고 결혼을 해놓고 도리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허우적대는 중생의 모습입니다. 이법계의 사람은 물에 빠질가봐 아예 바다로 나가지 않습니다. 결혼을 안 하겠다, 사업을 안 하겠다, 자식도 안 낳겠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돌아앉은 사람입니다.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혼자 가만히 있으면 괴로워할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법계를 세간이라 하면, 이법계를 출세간이라고 합니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이사무에법계의 사람은 큰 배를 만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