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무지무명의 작용을 이어갑니다. 그렇다고 무명의 잘못된 인식활동이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시작되어 그 결과 지금의 의식 활동이 잘못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식이 일어나는 지금 이 자리가 의와 의식의 분별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자리이면서 그것 자체가 무지무명의 현재라고 할수 있으므로, 지금의 마음작용에 깨어 있지 못한 것이 시작 없는 무명이면서 업식 내지 상속식입니다. T1000.0 : 흔히 말하는 지식, 지성은, 알되 바르게 알지 못하는 업식 내지 상속식으로 무명이다. 즉 아는 것이 무지무명의 작용을 이어간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것임을 잊지말자.
일상의 의식에서 나의 존재 의식을 더욱 굳게 하는 분별과 타자들에 대한 다름의 이미지만을 쌓아가는 인식 내용이 강해진다는 것은 '견번뇌見煩惱'가 많아진다고 할 수 있으며, '나의 것'에 대한 애착이 커진다는 것은 '애번뇌愛煩惱'가 많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견見'이란 나라고 여기는 견해에 의해서 나가 성립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나'가 분별에 의해서 그렇게 보이므로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이미지로 비쳐진 나를 보는 것이지요. 업식이 비춘 현식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만들어진 '나'를 보는 것이므로 업식業識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쌓여 있는 나의 견해로 사물을 보는 습관을 업業이라고 하며, 업을 현행하게 하는 동력을 전식轉識이라고 하고, 나타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작용에 대해 만족과 불만족을 대비하지 않고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반면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가지고 사건, 사물을 본다는 것은 이미지와 맞고 틀린 것에 따라 만족과 불만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평안한 보기와 불편한 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지켜보는 습관보다는 이미지에 맞는가 틀리는가라고 분별하여 보는 습관이 편안하지 않는 마음과 집착을 형성합니다. T1000.0 : 이또한 어설픈 생각인지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 보기가 쉽지가 않다. 경험에 비춰보면 일어난 사태를 마음작용을 멈추고 보려할때 일어난 상황에서 마음 작용을 멈추려하기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때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특히 다른 사람과 관계하여 일이 일어날 때 마음작용을 ..
여기서 보면 모든 의가 오직 앎[識]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의 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무명에 의해서 분별의 망념이 생기고, 기억된 업식의 망념에 의해서 의와 의식이 발현되기 때문에, 업식부터 상속식까지의 다섯 가지 의로 생멸의 인연을 이야기합니다. 앎이 일회적인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속되면서 삼세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기억된 과거의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가 계속 이어지고, 현재와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추상하지만, 삼세와 사건들이 망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줄을 모르고 실재한다고 잘못 알면서 쓸데없는 근심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T1000.0 : 망념을 앎으로 대체하자. 순간순간 앎이 되면, 즉 무엇을 안다해도 그것이 망념임을 알고 망념을 내려놓고 앎이 들어오..
생각을 돌이키고 보면 언제나 현재 무명이란 인연이 만든 분별이 공성임을 자각하지 못한 인식이기에, 분명한 인식[明]이 없음[無], 밝게[明] 알아차리지 못함[無]을 뜻하지만, 무명만이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 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인연과 무명과 기억이 합쳐져 잘못된 인식을 만듭니다. 무상한 인연을 기억된 분별로 읽으면서 그것이 현재의 인식이라고 읽고 있는 것이 무명이면서 허망한 기억[妄念]이며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인식에 의해서 기억들의 총상이 인식 주체로서 자아가 되고 분별된 기억들의 영상이 인식 대상이 되면서 허망한 기억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T1000.0 : 무명이 인연이 만든 분별이 공성임을 자각하지 못한 인식이라 함을 덧붙여 말하면, 무명은 주체와 대상을 세워 따로 존재하..
현명한 투자는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청정도 청정이라고 할 수 없고, 늘 분별된 기억만을 인식의 대상으로 남기면서 그것을 다시 알아차릴 수 밖에 없습니다. 습관적인 인식의 틀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 틀을 '의意'라고 하고, 의를 통한 인식활동을 '의식意識'이라고 합니다. T1000.0 : 은 '의와 의식'를 다섯가지로 부른다. 업식, 전식, 현식, 지식, 상속식. 이중에서 지식은 "오염과 청정을 분별"하는 인식으로 매우 중요하다. 색수상행식으로 치면 행에 해당한다. 행을 닦는다는 修行의 행. 그렇기 때문에 다섯 가지의 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에 대한 다섯가지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별의 여력으로 형성된 기억인 업식業識이, 현재의 인연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면서[轉識], 자신의 경계를 만들고[現識], 만들어진..